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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Jan 27. 2024

아플 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나요?

어머니의 매생이굴국



요즘 노로바이러스가 유행입니다. 친구도 직장 동료들과 굴을 잘못 먹어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흡입한다는 한국인인지라 공짜로 굴이 들어왔다고 괜찮겠지라며 먹었다가 단체로 감염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취소되고 저는 친구에게 낄낄 장난을 쳤습니다. 다음부터는 노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는 것은 조심하기로요. 


그래놓고 왜 저는 조심하지 않았는지 저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친구를 만나 모처럼 매우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될 무렵, 친구가 오늘 저녁밥으로 '연어'가 어떻냐고 하더라고요. 평소 날생선 요리를 좋아하는 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연어를 먹었습니다. 굴-노로바이러스 공식이 생겨 있어서일까요. 연어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만찬과 다름없던 연어는 무척이나 맛있었습니다.






다음날부터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구토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변기를 붙잡은 저는 오전 내내 변기에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설사도 설사지만 배 속에서 장을 손으로 쥐어짜는 듯한 복통 때문에 눈물이 줄줄 나더라고요. 병원을 가고 싶은데 병원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는 길에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거실에 힘없이 엎드려 있다가 배가 너무 아파지면 다시 화장실로 기어 들어가기를 수 번, 있는 기운 없는 기운을 다 쓰고 나니 살려줘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뜨끈뜨끈하게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차가운데 다른 곳은 열이 나니 이 놈의 몸이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루푸스가 올라온 건가 싶었는데 친구에게서 「야 너 몸 괜찮냐. 나 지금 완전 죽겠음.」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오고 알았습니다. 

아, 이거 노로 바이러스구나.



기저질환이 있어서일까요. 친구는 삼일 만에 거뜬히 털고 일어났는데 저는 오일이 넘어가는데도 침대를 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설사도 설사지만 구토가 심해 입으로 뭘 넣기만 하면 헛구역질을 해댔습니다. 조금만 기름기 있는 걸 먹어도 토를 해 죽집의 죽도 사다 먹기 어려웠고, 정말 맨밥을 물에 개어 백미죽을 해 먹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아프니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너도 참 유난이라는 타박 섞인 걱정도 또 듣고야 말았죠. 


"엄마가 해준 거, 매생이굴국 먹고 싶다."


저는 몸이 힘들 때나 마음이 힘들 때, 어머니가 해주던 매생이굴국이 생각납니다. 산해진미 다 필요 없이 딱 고것이 생각납니다. 사실 굴도 평소에는 안 들어갔고 걸쭉하게 매생이만 잔뜩 들어가던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그래도 제 머릿속에는 가끔 겨울철에 들어갔던 그 조갯살의 비릿하고 꿀렁이게 씹히던 덩어리가 입안에 가득 겨울바다를 불러일으키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집 냉동실 한구석에는 항상 검은 머리터럭 같은 것이 소분되어 엉겨있고는 했습니다. 그것이 저는 파래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매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청소년기까지 저는 매생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비교적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계란국과 매생이국을 가끔 해놓고 나가시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건더기도 없이 숟가락에 걸쳐져 길게 늘어지는 모습이 둘 다 비위가 상하게 느껴졌죠. 

매생이국보다는 라면이 더 맛있던 시기. 동생들에게 "내가 라면 끓여줄까?"라며 공범을 만들어 인스턴트에 몸을 길들이던 때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마 저는 그때도 루푸스의증이었을 겁니다. 수학여행을 갔는데 신나게 햇볕을 쐬며 하루 놀았다고 2일 차 때부터 원인 모를 염증 때문에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혼자 서울에 올라갈 수 없어 양호 선생님과 지역 대학병원에 가 링거 3개를 양 손목과 발등에 맞아가며 버텼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관광을 할 동안 버스 안 선생님 옆에서 눈을 감고 숙소에 가기만 기다렸죠. 

수학여행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병원에 가 검사를 했지만 역시나 나오는 것은 없었습니다. 신장에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가 열이 심하게 난 것 같다는 게 의사들의 초음파 검사 결과였고, 피에 염증이 많아 두통이 심한 것 같다는 게 피검사 결과의 전부였죠.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제게 어머니가 만들어 준 것이 매생이굴국이었습니다. 평소 먹던 매생이국에 큰맘 먹고 냉동굴을 사다가 넣어 만든 국.

평소에 질리도록 먹던 익숙함이라서일까요? 뜨끈한 국물에 밥을 훌훌 말아 죽처럼 떠먹으니 병원 밑 죽집에서는 넘어가지 않던 숟가락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때부터입니다. 제게 중요한 일이 있거나 크게 아플 때면 꼭 매생이굴국이 생각나는 건. 오죽하면 미끈한 건 쳐다도 보지 말라던 수능날조차 어머니가 "무슨 반찬 해줄까?"라는 말에 "매생이굴국 해줘!"라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좋아하는 음식이 이것저것 많이도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몸이나 마음이 약해질 때 추운 손과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매생이굴국이 떠오릅니다.

혼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며 아플 때 죽집에서도 매생이굴죽을 사 먹고는 했습니다. 첫 직장에서 너무 마음이 헛헛했던 날, 혼자 죽집에 갔던 날의 메뉴도 그것이었습니다. 

"아가씨가 이런 걸 시키네?"라는 사장님의 말에 코를 훌쩍이면서 "좋아해요." 하고 웃었던 기억. 눈부시도록 시린 추억조각입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노로 바이러스입니다. 굴을 조심해야 하는데 매생이굴국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어머니께 이야기해 봐야 철 덜 들었다고 한소리 들을 게 뻔합니다. 얌전히 백미죽에 참깨 솔솔 뿌려 위를 데우고 따끈한 물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몸이 나아지기를 기다려야겠어요.






(사진 첨부 : 조선일보 [공복 김선생] 中 해남천일관 매생일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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