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야 Feb 16. 2021

아내에게 듣고 싶은 한마디

[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뚜두두두, 뚜두두두…”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실눈을 뜨고 보니 새벽 6시. 손을 더듬어 알람을 끈 후 ‘10분만 더’하며 다시 스르르 잠에 빠졌다. 두 번째 알람 소리에 다시 실눈을 뜨고 보니, ‘오, 마이 갓! 지각이닷!’ 헐레벌떡, 주섬주섬, 씻는 둥 마는 둥, 먹는 둥 마는 둥, 매다 만 넥타이를 목에 건채 가방을 들고 달려 나가려는 순간, “여봇!”하며 아내가 불러 세웠다. 아차, 음식물 쓰레기를 깜빡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버스 정거장으로 냅다 달렸다. 그래도 지각이었다. 부장님께 아침부터 깨졌다. ‘허구한 날 늦으면서 넌 뭘 자랑할 게 있다고 맨날 바지 지퍼를 열고 다니냐, 볼 것도 없는데’라고 하셨다. 점심에도 깨졌다. 빨리 먹기 시합하듯 점심을 해치우고, 잠깐 눈 좀 붙이려고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상무님께 불려 갔던 부장님이 친히 부르셨다. “이것도 보고서냐?”라고 하셨다. 코앞에 보고서를 내밀고 흔들며 큰소리치다 바닥에 내팽개쳤다. 오늘, 벌써 두 번 깨졌다.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다. 그래도 술은 마셔야겠다.


지난 주말, 아이 데리고 놀러 가자는 아내에게 ‘주말에 어딜 또 기어나가냐’는 핀잔 들어가며 회사 나와 자정 무렵까지 작성한 보고서였다. 역시 맨 정신으론 집에 못 들어가겠다. 함께 깨진 동갑내기 김 차장과 회사 주변 삼겹살집에서 한잔했다. 술기운이 돌자 김 차장에게 속마음을 터트렸다. ‘회사가 가정파괴범이라고! 이렇게 사는 게 맞냐고! 주말에도 아이들과 못 놀아주고 핀잔 들어가며 회사 나와 일해도, 돌아오는 건 또 ‘핀잔’뿐이라고.’ 그래도 상사라서 ‘무슨 소리 하냐’고 달래줄 줄 알았던 김 차장이 나보다 더 지친 표정으로 “맞아”하고 읊조리며 소주를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어쩔 수 없이 다 참고 다니는 거구나.’ 


그렇게 술이 떡이 돼 집에 들어오면 돈은 못 벌고, 허구한 날 술만 처먹는 남편만 보인다. 힘들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 사표를 만지작거리며 처자식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술로라도 버티려는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당신 오늘 힘들어 보이네, 괜찮아? 정 힘들면 회사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 해도 돼.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난 당신 믿어, 힘내!” 오늘처럼 때려치우고 싶은 날, 아내에게 이런 얘기 들을 수 있다면 남자는 울지도 모른다. 속으로.


 “그동안 혼자 힘들었구나.”

“몸 생각해서 너무 무리하지 말어. 오늘 하루도 힘내!”

“무슨 일 하든 난 당신 믿어. 당신, 잘할 거야.”

“오늘도 고생 많았어. 고마워.”


남편이 힘든 시기에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있다면 평생 아내에게 고마워할 거다. 속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최소한 남편은 아내가 자기 입장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힘들어 때려치울까 고민할 때 무시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면 사고 칠 수 있다. 남편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아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외롭다. 안 받아주면 어린애처럼 삐친다. 누군가 ‘남편은 남자 더하기 아들, 아내는 여자 더하기 어머니’라고 했다. 남자, 여자를 빼면 남편은 아들, 아내는 어머니만 남는다. 어머니가 아들 달래듯 달래주지 않으면 삐쳐서 사고 친다. 그게 남자다. 그러니 눈 딱 감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자. 


그러나, 현실은 아내도 힘들고 피곤하다. 온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집안일까지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그런 말 해 줄 여력이 없다. 오히려 그런 말 듣고 싶다. 아니면 ‘맨날 술만 퍼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그런 말 해주고 싶지 않다. 몇 번인가 “당신 요즘 힘들어 보여, 괜찮아?”라고 묻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럼 힘들지, 안 힘드냐?”라고 퉁명스레 쏘아붙인 남편에게 더 이상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미워 죽겠다. 아내 입장도 이해는 간다. 


평소에 잘해야겠다. 남편이 아내에게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선 평소 신뢰가 중요하다. ‘이 사람이라면 잘할 거야’라고 믿고 내맡길 수 있도록 평소에 잘해야 한다. 힘들다고 맨날 술만 퍼먹지 말고! (저어, 말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하루 또 살아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