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딱딱딱딱…”, “치지지직…”
양배추를 썰고, 차슈(일본식 돼지고기구이)를 구웠다.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인 일본인 아내는 웬만하면 매일 새로운 요리를 해주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점심 뭐 먹고 싶어?” “미소 라멘!” 집에 재료가 있으면 오케이, 없으면 다른 음식을 주문받았다. 난 선택권이 없었다. 가끔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이들 옆구리를 찔렀다. “얘들아, 탕수육, 탕수육. 탕수육 먹고 싶다고 해.” “싫어!” 호불호가 확실한 둘째 아들은 자기가 먹고 싶지 않으면 단호했다. 그럼 그날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했다. 먹다가 차슈가 남으면 다음 날 점심은 차슈덮밥이었다. 그래도 남으면 내 도시락 반찬이 되었다. 아니면 내가 다 먹어 치워야 했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새로운 요리를 해 줄 수 있었다.
아내가 요리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 우선 있는 재료를 가지고 시작한다. 집에 있는 재료로 아이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 요리할까 궁리한다. 다음 지지고 볶고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맛있는 요리를 완성한다. 다음 날 요리도 있는 재료를 가지고 연결한다.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기도 이처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을 제외하고 남은 일 중 가장 먹고살 자신 있는 일부터 시작해서, 단계를 밟아, 하고 싶은 일과 연결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은 주로 거창하다. 먹고살기보다 자아실현 쪽에 가깝다. 꿈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갭이 크다. 먹고사는 일과 거리가 있다 보니 지레 포기하고 만다. 맞다. 먹고살기가 먼저다. 굳이 매슬로우의 결핍 동기와 성장 동기 이론을 끌어들이자면 먹고 살기는 결핍 동기와 관련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성장 동기와 관계가 깊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먹고살 수 없으면 인생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결핍 동기가 채워지지 않으면 성장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방법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선 하기 싫은 일을 제외하고 남은 일 중에서 가장 먹고살 자신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나의 경우 퇴사하고 뭐 해 먹고 살지 고민할 때 일단 조직 생활은 제꼈다. 얽매이는 거 싫어하는 나의 성향상 다시 조직 생활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만 받다가 얼마 못 가 또 그만두리라는 걸 내 마음은 벌써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취업도 실패하고 깨달았다) 그러면 ‘자유롭게 먹고살 수 있는 일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하고 셀프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이 ‘장사’였다. 장사도 먹는장사, 먹는장사도 돈 욕심보다 나랑 잘 맞는 장사, 그래서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장사를 선택했다. (장사도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먹고사는 일로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되면 멈추지 말고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한다. (대부분 여기서 멈춘다.) 하고 싶은 일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거다. 창업 전 10여 년 장사 경험이 쌓이면 창업 관련 책을 한 권 쓰기로 목표를 정했었다. 그냥 쓰고 싶었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었다. 나의 경험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장사 틈틈이 책을 썼다. 글을 써 보니 이게 또 적성이었다. 좋았다. 출간 후 김 작가님이란 말을 들었을 때 설렜다. 이거다 싶었다. ‘작가’라는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책’이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연결고리를 만들었으면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 어떤 경험도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연결된다. 나의 경우는 장사하면서 쓴 책이 연결고리가 되어 ‘작가’라는 새로운 하고 싶은 일과 연결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의도하고 연결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일과 연결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만약 회사 다닐 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퇴사하고 바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계가 막막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기 전 회사를 담보로 대출받아 버틸 자금을 마련하고, 하고 싶은 일 중에서 그래도 가장 먹고살 자신 있는 ‘장사’를 시작해서, 그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또 다른 하고 싶은 일과 연결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상 후보까지 된 류현진이 말했다. “처음부터 메이저리그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눈앞의 일을 하나씩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하다 보면 연결된다. 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먹고살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연결고리를 찾는 단계를 밟아, 하고 싶은 일과 연결하면 언젠가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내 눈치 안 보고, 나도 내가 먹고 싶은 탕수육 해 먹겠다고 처음부터 집에 있는 재료 썩혀 두고 탕수육 재료 사다가 요리해 봤자 재료비만 날린다. 우선 집에 있는 재료로 하고 싶은 요리를 하고, 요리가 익숙해지면 그때 탕수육 재료 사다 먹고 싶은 요리 해 먹으면 된다. 그러면 나도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부탁 안 해도 된다.
그땐 절대 아내 눈치 안 볼 거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