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녀오세요!"
엄마가 출근을 시작했다. 이제 10개월이 된 아기와 35살 아빠만 집에 덩그러니 남았다.
"공주야 너 아침밥 먹어야 되는데 뭐 먹냐..?"
냉장고를 뒤적 뒤적하다가 자연스럽게 머리를 긁적이게 됐다.
냉장고를 보며 끙끙거리다가 옆을 슬쩍 봤다. 아기는 혼자 앉아보려다 뒤로 벌러덩 넘어가고 있었다.
"공주야 아침은 원래 거하게 먹는 거 아니야.. 그렇지?"
"일단.. 오늘 아침은 삶은 고구마 먹고 오후부터는 아빠가 일류 요리를 해줄게"
아이가 돌즈음이 되어 혼자 밥을 먹을 수는 있게 되자,
하루하루는 정말 밥과의 전쟁이었다. 아직은 다른 것은 욕심내지 않는 나였지만, 먹는 것 하나는 좀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제대로’라는 것이 정말 범위가 한도 끝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 죽을 막 뗀 아기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지, 간은 어느 정도 하면 되는지, 매운 건 먹을 수 있는 건지도 아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잘 먹이는 것일까 찾아보다가 인터넷에서 한참 검색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은 잡혔다.
하지만 육아 블로거들의 요리들을 보면서, '아주 잘 먹이겠다'는 각오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유명한 육아 블로거들을 보면 ‘ 와 내가 저 아기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블로거들은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아기들에게 먹였다. 나는 살면서 먹어본 적도 없는 재료들을 사용했고,
거기에다가 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한된 상황에서 밥새우니 다시마 육수니 해물 육수니 하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잔치상처럼 일회성이라면 무리해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이건 앞으로 매일 벌어질 일이고 거기에다 하루에 세 번 일어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내 밥과 저녁에 일에서 돌아올 아내의 밥까지 생각하면 (우리 부부는 아침밥은 먹지 않는다.) 하루에 다섯 끼의 식사를 준비해야 되는 모양새였다.
아기가 먹는 양은 정말 적었다. 반찬 가짓수는 4-5개는 해주는데, 쪼끔 쪼끔씩 요리를 해내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엄청 난 양을 만들어 놓고 팩에다가 소분해서 일부는 냉장실에, 일부는 냉동실에 넣어 놓는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소고기 양지나 사태, 국거리 고기 잔뜩 사서 들통에다가 몇 시간 끓이고 양지나 사태는 꺼내놨다가 식으면 찢어서 들통에서 끓인 국물 몇 국자 넣고 간장 몇 방울,
사과 주스 아주 조금 넣고 졸여서 장조림을 만든다.
들통에 국물을 몇 국자 떠서 그 물에다가 콩나물이나 시금치 대충 데쳐서 들기름에 무쳐서 준다. 나머지 국거리 고기가 남아있는 거대한 통에다가 미역 왕창 넣고 다시마 좀 넣고 미역국을 끓여서 식힌 후에 팩에다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닭도 한꺼번에 두세 마리를 산 다음에, 한 번에 다 들통에 넣고 끓였다. 그리고 다리만 꺼내어 물기를 제거했다. 그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구웠다.
닭다리가 살짝 그을리듯 구워지면 끓인 국물을 국자로 몇 국자 퍼고 간장 조금과 야채를 조금 썰어 넣고 졸였다. 그리고 아기에게 닭다리를 쥐어주었다.
퍽퍽 살 일부는 또 건져내어 위에 소고기 장조림과 똑같은 방법으로 닭고기 장조림을 만들어 냉장실에 보관했다.
나머지 들통에 남아있는 국물과 닭고기에 무와 파, 다시마를 집어넣어서 좀 더 끓이고 닭곰탕으로 내어주었다.
이렇게 맛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한 번 들통을 끓이면 몇 가지 반찬을 만들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요리가 이런 식이었다. 많이 만들고, 소분해서 냉장실, 냉동실에 넣고 조금씩 꺼내어서 데워 먹였다. 아내의 밥은 아기를 먹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국에다가 채소와 소스를 더 넣어서 주기도 했고, 빨리 만들 수 있지만 영양은 충분한 김치볶음밥이나 야채전 등을 주로 해줬다.
아기가 커 갈수록, 밥을 준비하는 시간은 점점 고난도가 되었다. 돌 전에는 아기는 기어 다니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주방으로 오는 것을 제지하기가 쉬웠다. 주방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특식을 종종 준비해 줄 여유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점차 개월수가 늘어가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팔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 팔로 요리를 하고 있으면 아기는 신기한지 잠자코 요리하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기 무게에 얼얼해진 내 팔 하나만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아기는 그 위험한 조리 도구들을 굳이 하나씩 다 체험하고 싶어 했다. 걱정이 되어 아기를 안고 있던 한 팔을 조리 도구들에서 멀리 떨어뜨리면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어 대면서 “으어으어” 소리 지르고 얼굴은 벌겋게 터질 듯 폭발할 준비를 하곤 했다. 결국 사정없이 엉덩이를 내 한 팔 위에서 앞뒤로 흔들어 재끼며 소리 지르는 아기를 한 팔로 견디지 못해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아기는 요리하는 내 다리를 붙잡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공주야 아빠 밥이 아니고 너 먹이려고 하는거잖냐아아, 금방 이거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잠깐만”
“아니 여기 기름 팡팡 튀는데 이리 오면 어떡하냐 너 기름 단 한 방울만 맞아도 웅~예~ 하고 막 운다 제발 가까이 오지 마”
애교를 부리고 정색하고 애걸해도 아기에겐 소용이 없었다. 그저 아빠가 요리하고 있는 뜨거운 주방으로 소리를 지르며 요란하게 돌격할 뿐이었다.
오늘도 울고 떼쓰며 달려드는 아기를 한 팔로 저지하다,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아기의 힘에, 기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