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기니피그의 아슬아슬한 동거

by 훈남아빠

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애완동물을 집에 들였다.

원래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60점만 맞아와도 부모님이

“그래도 50점은 넘겼구나 우리 아들 잘했다 허허허” 해주시곤 했다.

어린 나이의 나는 부모님이 말은 그렇게 해도 슬슬 성적이 걱정될 것이라 생각해서 부모님께 거대한 딜을 제안했다.

“제가 이번 시험에서 몇 점 맞으면 강아지 키우게 해 주실래요?”

엄마의 대답은 “백점을 맞아도 안돼”였다.


후에 알고 보니, 부모님은 별로 내 성적을 걱정하지 않아서 내 제안을 거절한 건 아니었다. (누나와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할지 오랜 시간 얘기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이러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가족들은 한 쌍의 새를 키웠다고 한다.


어느 날은 가족들이 연을 날리러 공원을 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새들을 창 밖에 걸어놓고 외출을 했단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왕창 쏟아지면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그 새 부부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마음이 정말 여린 엄마는 그때 사건을 두고두고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절대로 내 인생에서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겠다. 나는 그 정도로 섬세한 사람이 못된다.’라는 엄청난 각오를 하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가족들의 그런 각오는 나에게는 또 다른 반작용을 일으켰다. '내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만 해 봐라, 나는 반려동물을 키울 것이다.'

그런데 괜히 강아지나 고양이는 부담스러웠다. 와이프의 입장도 확고했다. 와이프는 인터넷에서 강아지나 고양이의 사진이나 쇼츠들을 굳이 찾아서 볼 정도로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우리 둘 다 출근했을 때 그 아이들이 받을 스트레스는 어떻게 하냐며 노년에 퇴직하고 나서나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못을 박았다. 고양이가 꾹꾹이를 해주는 쇼츠를 아무리 보여주고 강아지 배를 끌어안고 함께 잠자는 영상을 보여줘도 "퇴직하고!" 하고 못 박기에 고양이와 강아지를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육지거북이도 키우고 싶었던 나는 결혼 전에 수시로 육지거북이가 풀을 뜯어먹는 영상을 보여주며 당시의 여자친구(현와이프)를 설득해 보았으나, 고양이 강아지와는 다른 이유로 거북이를 키우는 데도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털이 없는 동물은 전혀 귀엽지 않다며 내 설득을 거절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하와이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도로를 주행하다가 바다거북이가 쉬어가는 해안가라는 푯말을 보고, 우리는 잠시 내려서 걷기로 했다. 모래사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몰려있는 인파들이 보였다. 우리는 그쪽 방향을 향해 걸었고 거기에는 모래에서 쉬고 있는 바다 거북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냥 왠지 좋아서 주르륵 한 방울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아니 여보 왜 울어!?” 하며 물었다.

“그냥.. (이 모든 게) 너무 좋아서”

그런데 ‘거북이가 너무 좋아서’라고 이해한 와이프는 잠시 고민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신혼여행 끝나고 집에 가면 여보 원하는 육지 거북이 키우자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쓰면서 봐도 사람이 참 착하긴 하다.)



아무튼 그래서 육지거북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거기에 내친김에, 털 달린 동물들 중에서 개나 고양이보다는 괜히 뭔가 부담이 덜 한 것 같고,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운 ‘기니피그’ 도 함께 살게 되었다. 육지거북이를 일단 들이게 되니 뭔가를 키우는 데 저항이 줄어든 탓일지 인연이 잘 닿았던 것인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와이프도 동의했다. 육지거북이는 사랑스러웠으나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고, 기니피그는 나를 알아보긴 했으나, 여전히 그녀에게 나는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정도의 교감을 하진 못했다.



거북이 ‘호누’와 기니피그 ‘카누’가 있어서 2박 3일의 여행도 갈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 녀석들 덕분에 많이 웃고 행복했다. 마트를 가면 언제나 거북이 '호누'를 줄 채소들과 기니피그 '카누'가 좋아하는 미나리를 먼저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우리는 5년을 함께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기가 생긴 후였다.


육지거북이인 ‘호누’와 기니피기는 ‘카누’를 키우면서 가장 큰 불편함 중에 하나는 위에 말한 것처럼, 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개나 고양이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데리고 갈 수 있기라도 하지만 기니피그는 애초에 비행기에 동반 탑승조차도 되지 않고 차를 타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긴 시간 함께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곤란했던 점을 꼽으라면, 별생각 없이 기니피그를 키우기 시작한 후에야 내가 털 동물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지금 와서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수명이 최대 8년까지도 사는 동물을 들이면서 내가 알레르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않다니..)



카누를 만지거나 카누의 집을 청소해주고 나면 내 팔이나 내 상체에는 모기에 물린 것처럼 온통 벌겋게 살이 부풀어 올랐고 간지러웠다. 정확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때는, 갑자기 호흡이 불편해지며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카누가 없는 공간 밖에 나와서 꽤 긴 시간 호흡을 해야 했다. 좁은 집 안에서 기니피그와 함께 하다 보니 나의 불편함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래도 약을 바르거나 먹어가며 함께 동행을 잘하고 있었는데, 아기가 생기니 참 생각이 많아졌다.



집 안에서 함께 카누를 키우다 보니 아무리 청소를 자주, 정성껏 하더라도 집 안에는 늘 카누의 건초가 조금씩 떨어져 있고 특유의 냄새가 조금씩 남아있는 탓이었다. 그나마 육지거북이는 거대한 실내 사육장 안에서 키웠으므로 카누에 비해선 부담이 덜했다.



그런데 아기가 생긴다 하니, 집은 좁고,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일단 육지거북이인 '호누'는 분양을 보내기로 했다. 육지거북이인 '호누'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크기가 커지면서, 육지거북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가치가 높아졌다. 거기에 우리는 호누와 정이 들었지만, 호누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도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가족 같았던 육지거북이를 가지고 장사를 하긴 싫었기 때문에 분양에 까다로운 조건들을 걸고, 거북이 '호누'와 사육 세트를 책임비만 받고 분양했다. 다행히 육지거북이를 키워보는 것이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며 허허 웃으시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집까지 오셔서 직접 호누를 인계해 가셨다.



문제는 기니피그 '카누'였다. 카누는 우리를 졸졸 따르진 않지만 주인으로 알아보는 동물이다. 우리가 분양을 보낸다면 카누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거기에 기니피그는 성체가 되면 분양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다. 새끼 때 받더라도 분양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털 달린 동물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무료 분양을 하면 분양받아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키우는 파충류의 먹이로 주거나, 실험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글을 봤다. 그 글을 보고는 도저히 카누는 분양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무리 아기가 소중하더라도 부모가 생명을 함부로 대하면서 아이에게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둥,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은 책임을 지라는 둥 이런 가르침을 말할 수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그냥 카누에게 굉장히 깔끔한 나무로 된 집을 사주고 더 자주 환기하고 더 자주 청소하며 집 안에서 계속해서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로 아기가 기어 다니다가, 카누 집 근처에 가서 카누 사육장에 손가락을 살짝 올렸다가 카누에게 물린 적이 있다. 카누가 작정하고 물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앙..?’ 하고 이를 댄 느낌인데 아기 입장에선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카누와 아기의 흥미로운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반가운 사람이나 생명체를 만나면 손을 흔들며 웃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 아기는 카누를 볼 때마다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하지만 결코,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카누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이유에는 아기에게는 좋을 것은 하나도 없으나, 반려동물을 들인 우리의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카누와 함께 하며 아기가 성장하다 보니, 아기는 카누에게 먹이를 직접 주고 싶어 했다. 어릴 때 단 한 번 물렸던 그 충격 때문인지, 여전히 아주 가까이 가지는 않으면서도 아기는 미나리나 청경채를 카누에게 던져 주고는 카누가 와구와구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곤 했다. 나와 같이 귤이나 딸기 같은 과일을 먹다가도 아기는 카누가 있는 곳을 갑자기 가리키며 “쁘쁘쁘쁘!!!” 하고 외치곤 했다. 과일을 손에 쥐어주면 아기는 달리듯 카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이 맛있게 먹던 것들을 기꺼이 내어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기는 동생은 없지만, 어디에 나가서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내어주는 것에 별로 거리낌이 없다. 지금에 와서는 카누와 함께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정도이다. 그동안 아기와 기니피그의 동행이 가능할까 한참을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아기는 카누의 집 안을 들여다보며 카누를 멍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카누는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아기를 반겨주기도 했다. 아기는 동물이 그려진 책들을 보다가도 기니피그와 닮은 토끼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나오면 카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또 "쁘쁘쁘쁘!"를 외쳐댔다.


이미 카누는 5살의 기니피그로 기니피그 계에서는 할머니이다. 부디 아기 녀석과 기니피그 '카누'의 동행이 오래도록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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