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삶을 길러내는 법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 세계는 어떤 책에 마음이 머무는지, 어떤 음악을 들을 때 마음이 놓이는지, 또 어떤 취향으로 하루를 채워나가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결을 띱니다. 그래서 요즘은 출신이나 직업보다도 “무엇을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이 한 사람을 더 잘 보여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취향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존재를 설명하는 조용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물론, 취향은 처음부터 개인의 고유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계층과 문화 자본이 취향의 방향을 좌우했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트로트, 원목 가구와 플라스틱 의자, 하이엔드 오디오와 블루투스 스피커. 이 모든 선택의 이면에는 각자의 삶의 배경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이야말로 사회 구조와 계층의 질서를 가장 은밀하게 반영하는 거울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질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 손에 쥐어진 이후, 누구나 자신의 감각을 세상에 펼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스트리밍 서비스는 더 이상 소수만의 무대가 아닙니다. 방 안에서 만든 작은 영상이 수백만 명의 공감을 얻고, 동네 카페의 분위기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시대. 우리는 지금, 감각의 민주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취향 절충주의’입니다.
클래식과 힙합, 명품과 빈티지, 동양과 서양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해진 방식에 기대지 않습니다. 각자의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짜 맞추며, 자기만의 조합을 만들어갑니다. 그 새로운 감각의 흐름은 문화뿐 아니라 소비의 방식, 나아가 경제 질서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른바 ‘취향 경제’의 시대. 브랜드는 더 이상 다수를 위한 제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분화된 감각 공동체를 향해 말을 걸고, 알고리즘은 점점 더 나를 닮아갑니다. 넷플릭스의 추천 목록, 스포티파이의 재생목록, 쇼핑 피드는 나보다 먼저 나의 취향을 이해하고 제안합니다. ‘나답게 산다’는 욕망이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소비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흐름 앞에서 한 가지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모든 이에게 취향을 기를 수 있는 조건이 똑같이 주어진 것일까요? 현실은 다릅니다. 누구나 유튜브 채널을 열 수는 있어도, 누구나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취향을 표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시간과 여유, 배경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취향의 민주화는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곧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 앞에서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취향은 어떻게 진짜 자산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답을 ‘축적’이라는 단어에서 찾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시간이 머뭅니다. 기꺼이 반복하게 되고, 더 알고 싶어 지며, 마침내 나만의 언어로 말하고 싶어지는 마음. 그 마음이 쌓여 비로소 하나의 취향이 됩니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커피의 향과 산지, 추출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애정과 몰입이 필요한 경험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유홍준 선생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문장은 원래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지만, 저는 취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가볍게 스쳐 지날 때는 그저 멋져 보이는 것에 불과하지만, 애정을 갖고 오래 바라보면 그 안의 결이 보이고, 그 결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진정성이 있습니다. 남들이 좋아하니까, 유행이니까 따라가는 것은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감각만이 나를 오랫동안 움직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성실함과 인내입니다.
유행은 사라지지만, 진짜 취향은 남습니다.
이처럼 자기만의 감각을 오랫동안 지켜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빈티지 워크웨어를 수집한 디자이너, 주말의 취미였던 바비큐를 식당으로 발전시킨 요리사, 클래식한 감성을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유튜버. 이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습니다. 자신의 속도로, 진심을 다해,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을 탐구했다는 점입니다. 그 꾸준함과 깊이감이 결국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것에 감동하고,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며, 어디에 오래 머무는지를 아는 사람은, 자기 삶의 중심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함께 나누고, 기꺼이 공유할 수 있을 때.
삶은 더욱 따뜻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 연습입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그 좋아함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천천히, 그러나 성실하게 답해가는 삶. 그것이 바로 나만의 취향 자본을 가진 사람의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세상의 어떤 부보다도 단단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