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토)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1차 관람
뉴욕은 밤새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새벽녘, 일찍 눈이 떠진 건 밤새 도시에 내려앉은 눈의 정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오늘 일정에 대한 설레임 때문이었을까요?
알람보다 먼저 잠을 깨운 그 고요한 설레임 속에서,
저는 오늘이 이번 여행의 정점(頂點)이 될 것임을 직감합니다.
오늘은 제가 뉴욕에 온 가장 사적인 이유이자 인류가 남긴 아름다움의 총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과 조우하는 날입니다.
호텔 문을 나서자 하얗게 변해버린 거리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눈 위를 내딛으며, MET를 향한 3일간의 설레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날로, 시은이와 함께 미술관의 문을 엽니다.
제가 이 공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아이도 잘 알겠지만, 아빠의 유난스러운 취향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눈 내린 풍경을 거닐듯 가볍게 함께하고,
내일부터 이어질 여정은 시은이에게 자유를, 저에게는 오롯한 고독을 허락하기로 했습니다.
미술관으로 향하며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떠올립니다.
뉴요커 잡지사 기자라는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10년 동안 푸른 제복 아래로 숨어들었던 그는 말했습니다.
현대인은 매일 수천 장의 이미지를 소비하느라 그림 한 점이 주는 기적을 놓치고 살기에,
미술관은 반드시 ‘성소(聖所, Sacred Space)’여야 한다고요.
그가 말한 ‘성스럽다’는 것은 종교적인 엄숙함이 아니라, 바쁜 일상과 철저히 ‘구별된(Set apart)’ 공간,
오직 침묵과 대상만이 존재하는 치유의 장소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밤새 내린 눈 덕분에 그가 말한 ‘성스러움’의 의미가 평소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5번가의 정적을 뒤로하고 그레이트 홀(Great Hall)의 높은 돔 아래로 들어섭니다.
묵직한 문 너머로 발을 들이자 시린 눈바람은 저만치 물러나고,
미술관 특유의 정갈한 공기가 안온하게 온몸을 감쌉니다.
상처 입은 한 남자가 10년 동안 머물며 치유받았던 그 ‘구별된 숲’으로, 저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입장합니다.
하지만 그 웅장한 입구를 통과한 직후, 우리는 직감했습니다.
이곳은 ‘함께’ 손잡고 산책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깊은 숲이라는 것을요.
5천 년의 역사가 첩첩이 쌓인 미로 속에서 저의 욕심으로 아이를 끌고 다니는 건 무리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연스럽게 흩어져 각자의 속도대로 이 거대한 아름다움을 탐험하기로 했습니다.
홀로 2층 회화관을 거닐며, 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와 어머니’를 그린 세 점의 그림 앞에 차례로 멈춰 섰습니다.
가장 먼저 발길을 잡은 건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마돈나와 아이>입니다.
패트릭 브링리가 가장 힘겨운 날마다 찾아와 위로를 받았다는 바로 그 그림.
화려한 대작들 사이, 촛불 그을음이 훈장처럼 박힌 이 작은 액자는
6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표보다 더 값진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림 속 성모의 시선은 품 안의 아기가 아닌 먼 허공을 향해 있습니다.
훗날 닥쳐올 아들의 비극을 미리 껴안고 있는 듯한 그 깊은 체념과 감내의 눈빛.
500년 전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10년 전 한 경비원의 깊은 슬픔을 달래주었던 그 눈빛이
시간을 건너와 제게도 조용히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그 고요한 슬픔은 곧이어 프랑수아 조제프 나베즈의 <무고한 아이들의 학살> 앞에서 비명이 되어 터져 나옵니다. 마태복음 2장 16절, 베들레헴의 두 살배기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 했던 헤롯왕의 대학살을 그린 작품입니다. 사실 방문 전 리스트에는 없던, 누구도 제게 추천하지 않았던 낯선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그 처절한 비극 앞에서 저는 한참 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어머니들의 공포와 절규가 너무나 생생해,
오히려 제 안의 묵은 감정들까지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처연한 슬픔과의 조우를 통한 감정 정화와 치유,
이것이 제가 숨겨진 이 걸작을 당신에게 꼭 권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은 폴 고갱의 <이아 오라나 마리아(Ia Orana Maria)>.
타히티의 풍요로운 원색 속에 서 있는 또 다른 어머니입니다.
‘성모 마리아께 경배를’이라는 뜻의 제목이지만,
이곳엔 엄숙한 성당 대신 붉은 꽃과 탐스러운 과일이 가득합니다.
두초의 슬픔과 나베즈의 고통을 지나 만난 타히티의 마리아는, 생명 그 자체가 축복임을 웅변하는 듯합니다.
세 명의 어머니와 세 명의 아이를 거쳐, 저는 드디어 현실의 제 아이와 재회합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기적처럼 시은이를 마주친 곳은 바로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 앞이었습니다.
황금빛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16세기의 풍경.
화가는 캔버스의 가장 앞, 주인공의 자리에 배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 농부들을 배치했습니다.
세상은 저 뒤편(Background)에서 거대하고 신비롭게 흘러가지만,
농부들의 진짜 삶은 여기 앞쪽(Foreground), 밥을 나눠 먹는 이 찰나의 순간에 존재합니다.
그림 속 어머니들의 슬픔과 고통, 환희를 지나 내 딸을 다시 만난 순간,
브뤼헐의 메시지가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시은아, 저 뒤에 펼쳐진 세상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신비롭단다.
이 미술관처럼 말이야. 하지만 우리의 진짜 삶은
결국 여기, 이 앞쪽(Foreground)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나눠 먹는 이 순간에 있단다.”
그림 앞을 떠나며 저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이곳을 위한 3일의 시간을 떼어놓았습니다.
만약 단 하루의 일정으로 이 압도적인 공간을 찾았다면, 수박 겉핥기 식의 아쉬움만 안고 돌아갔을 테니까요.
오늘의 이 막막함과 경이로움을 교훈 삼아, 남은 이틀간의 기록은
훗날 이곳을 찾을 누군가를 위해, 또 다시 올 저를 위해
'어떤 작품을 어디서 보아야 할지' 안내하는 친절한 가이드 형식으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미술관을 나서니 어느덧 저녁.
유명하다는 ‘JG멜론’의 햄버거를 맛보려 했으나 45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숙소 근처에서 간단히 해결하려던 찰나,
뉴욕 여행 준비 때 구글맵에 찜해두었던 ‘파스트라미 퀸(Pastrami Queen)’ 간판이
운명처럼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가게, 정갈한 실내, 다정한 서버의 안내,
그리고 무엇보다 입안 가득 퍼지는 투박하지만 진한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의 맛.
“와… 아빠, 여기 진짜 맛있다!”
시은이의 탄성 섞인 목소리에 브뤼헐 그림 속 농부들의 휴식이 겹쳐 보입니다.
거창한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샌드위치 한 조각이 주는 행복.
위대한 예술이 영혼을 깨운다면, 예상치 못한 맛집에서의 따뜻한 한 끼는 지친 육체를 구원합니다.
첫날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딸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살핍니다.
다행입니다. 나의 오랜 갈망을 채우기 위해 딸의 하루를 가둬두지 않을 수 있어서,
그리고 내일부터는 오롯이 ‘나’로서 저 성소의 문을 다시 열 수 있어서 말입니다.
시은이에게는 시은이만의 뉴욕을, 저에게는 예술과 독대하는 묵직한 고독을 허락하는
이 공평한 안배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합니다.
내일, 나는 다시 저 성스러운 숲으로 들어갑니다.
비록 5천 년의 미로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겠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저녁이 오면 언제나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줄
가장 확실하고 다정한 전경(Foreground), 사랑하는 딸이 숙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거대한 아름다움에 취하고, 소박한 밥 한 끼의 온기에 설렜던 하루.
나의 오랜 동경, 메트(MET)에서 쓰는 첫 문장은 이렇게 다정하고도 벅찬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내일의 고독은 벌써부터 달콤한 예감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