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일)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2차 관람
어제와 같은 시간 숙소를 나섰지만 공기의 질감은 사뭇 다릅니다.
막 세수한 얼굴같이 말갛게 갠 5번가의 아침이 저를 반깁니다. 오늘은 시은이에게는 '자유'라는 선물을, 저에게는 5,000년의 거장들과 오롯이 마주할 ‘독대(獨對)’의 시간을 주기로 한 날입니다.
책과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그들을, 수 세기의 시간을 견뎌온 붓끝의 치열한 떨림을 조우하러 가는 길.
마치 오래전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것 처럼 가슴 한구석이 설레옵니다.
이 거대한 미의 성소를 하루 이틀 만에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해서 오늘만큼은 지도를 접어두고 오직 가슴이 이끄는 대로,
이 아름답고 깊은 숲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걸어 들어가 보려 합니다.
미술관에서 나눠주는 지도를 보아도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막막한 여행자들과,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올 저를 위해 제 마음을 흔들고 발길을 사로 잡았던 보석 같은 작품들을 기록합니다.
'문현호의 MET 컬렉션'이라 불러도 좋을 이 이정표들이 당신의 산책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았던 작품들의 원문 제목과 해당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갤러리 번호를 남겨두겠습니다.)
1. 1층: 시간의 켜를 만지며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1층 오른쪽 끝, 이집트관의 백미라 불리는 ‘텐두르 신전’입니다.
거대한 유리 벽 너머로 센트럴 파크의 겨울 풍경이 들어오고, 그 앞 인공 연못 위에 고요히 떠 있는 고대 신전의 자태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경외감을 줍니다. 기원전 15년경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이 신전은 아스완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으나, 인류의 협력으로 이곳 뉴욕까지 옮겨져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단순히 돌로 만든 건축물이 아니라, 수천 년 전 나일강의 햇살을 머금었던 기억이 21세기 뉴욕의 빛과 조우하는 경이로운 현장입니다. 물 위에 비친 신전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인간의 염원과 찬란했던 문명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고대의 숨결이 현대의 공간 속에서 오롯이 숨 쉬는 이곳이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가장 아름답게 악수하는 성지가 아닐까요.
이집트관을 빠져나와 548번 갤러리로 향하면, 로댕의 걸작 <칼레의 시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 영웅의 당당한 풍채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로댕은 그들을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목에 밧줄을 매고 죽음으로 걸어가는 그들의 축 처진 어깨와 거친 손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두려움을 꾹꾹 누르며 한 발짝 내딛는 그 무거운 침묵이야말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진짜 용기가 아닐까요. 삶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아버지들의 등과 닮아 있어, 차가운 청동상 앞을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2. 2층: 역사의 강을 건너 영혼의 안뜰로
이제 계단을 올라 아메리칸 윙 2층, 760번 갤러리로 향합니다. 미국관의 상징인 엠마누엘 로이체의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이 그곳에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습니다. 6미터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 안에서 독립전쟁의 혹한을 뚫고 노를 젓는 이들을 봅니다. 장군의 영웅적 기개보다 제 눈을 끈 것은 보트 안에 몸을 싣고 함께 노를 젓는 평범한 이들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인, 아프리카계 흑인, 원주민, 농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배를 타고 거친 역사의 강을 건너는 이 장면은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웅장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강을 건너기 위해 이름 모를 타인의 노질에 기대어 살고, 때로는 내가 젓는 노가 누군가의 항해에 소중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혹한의 강물을 배경으로 숭고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인간 내면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유럽 회화의 바다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저를 맞이한 것은 620번 갤러리의 카라바조, <음악가들>입니다. 연주를 앞둔 네 소년의 정지된 찰나, 그중 오른쪽 뒤편에서 우리를 도발하듯 응시하는 소년이 바로 젊은 날의 카라바조 자신입니다. 음악이라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인생을 거는 예술가의 치열한 고독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바로 옆 622번 갤러리의 조르주 드 라 투르가 그린 <점쟁이>는 세속적인 어리석음을 예리하게 꼬집습니다.
미래를 알고 싶어 노파에게 점을 치는 부잣집 도련님의 주머니를 주변 여인들이 은밀히 털고 있는 장면입니다.
실체 없는 환영에 눈이 팔려 현재의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청년의 모습은, 매일 수많은 정보에 매몰되어 정작 눈앞의 소중한 사람과 진실을 놓치고 사는 우리의 자화상 같아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618번 갤러리에 홀로 서 있는 안토니 반 다이크의 <자화상> 앞에선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갓 스물을 넘긴 천재 화가의 시선은 당당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합니다. 유려한 옷감 사이로 드러난 그의 하얀 손과 우아한 고개 꺾임에서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의 높은 자존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문득 거울 속의 저를 떠올려 봅니다. 저는 사실 자존감이 낮은 편입니다. 화가의 그 눈부신 확신이 부러우면서도, 제 안의 작아진 마음이 그 빛 앞에 조용히 떨립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겠지요. 반 다이크의 자화상은 역설적으로 제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얼마나 다정하게 안아주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637번 갤러리의 아드리안 브라우어, <흡연자들>은 앞서 본 귀족적인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내뿜습니다.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내들. 그들의 거친 모습 속에서 저는 가공되지 않은 삶의 날 선 활기를 봅니다. 아름다움이란 오직 정제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남루한 일상의 뒷골목에서도 펄떡이며 살아있음을 깨닫습니다.
3. 가족의 이름으로, 혹은 고독의 이름으로
유럽 회화관의 깊숙한 곳으로 향합니다. 625번 갤러리의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리아 테레사 초상> 속 14세 소녀의 눈빛은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있는 듯 다가옵니다.
이어 641번 갤러리의 고야, <알타미라 백작의 아들> 앞에 섭니다. 빨간 옷을 입은 아이 뒤로 이를 노려보는 고양이 세 마리의 섬뜩한 긴장감. 부유한 환경에서도 도사리고 있는 세상의 위협과 아이의 순수함 사이의 대조를 보며, 저는 딸 키우는 아빠의 마음으로 그림을 읽습니다.
마침내 616번 갤러리에서 렘브란트와 독대합니다.
<호메로스의 흉상을 어루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쓸쓸한 눈빛과 마주한 뒤, 같은 방의 <동방 복장의 남자>를 봅니다. 청년 시절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린 이 거대한 인물은 야망과 긍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제 영혼을 뒤흔든 것은 렘브란트의 <자화상(1660)>이었습니다.
파산하고 아내를 잃은 뒤, 쉰네 살의 늙어버린 그는 자신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처진 눈꺼풀과 깊은 주름을 가감 없이 드러낸 그 '지독한 정직함'이 오히려 가장 고귀한 위로가 됩니다.
"괜찮다, 늙고 지친 모습 또한 소중한 삶이다"라고 거장은 지친 제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했습니다.
그 무거운 사유를 뒤로하고 만난 614번 갤러리의 베르메르,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은 고요한 구원이었습니다. 창틈으로 스며든 빛이 여인의 하얀 두건 위에서 보석처럼 부서지는 순간, 그림은 나직이 속삭입니다.
"당신의 평범한 하루가 곧 기적이다"라고 말입니다.
4. 신화와 슬픔이 머무는 자리
여정은 상징주의와 낭만주의가 흐르는 800번대 갤러리로 이어집니다.
800번 갤러리의 귀스타브 모로가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지적인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스핑크스의 유혹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그녀의 눈을 응시하는 오이디푸스.
인간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수께끼 앞에 당당히 맞서는 인간의 정신을 봅니다.
810번 갤러리에 있는 에두아르 마네의 <천사들과 함께 있는 죽은 그리스도>는 신성함보다는 인간적인 비애가 더 크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과 그를 보살피는 천사들의 슬픈 눈빛. 마네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단절 앞에서도 숭고함을 잃지 않는 인간의 본모습을 투박하지만 진실하게 그려냈습니다.
801번 갤러리의 앵그르가 그린 <그리자유 기법의 오달리스크>는 색채를 걷어내고 오직 선과 형태만으로 여인의 우아함을 극대화합니다. 화려한 수식어를 뺀 뒤에 남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우리 역시 삶의 군더더기를 걷어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5. 격정과 고독, 그리고 우정의 기록
827번 갤러리의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가 그린 <폭풍우>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합니다. 폭풍우를 피해 달리는 두 연인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재난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결국 누군가와 맞잡은 따뜻한 손임을 증명합니다. 펄럭이는 옷감의 투명함 뒤로 비치는 소년 소녀의 맑은 눈망울에서 저는 잊고 지냈던 생의 찬란한 에너지를 봅니다.
804번 갤러리의 제롬이 그린 <바시 바주크(Bashi-Bazouk)>는 타인이 부여한 이름이 아닌, 스스로 세운 긍지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비단과 터번을 두른 당당하고 절제된 뒷모습. 거창한 수식어 없이도 빛나는 개인의 가치를 말해주는 그의 실루엣은 "남들이 무어라 부르든 당신은 당신 자체로 위엄 있다"는 무언의 격려를 건넵니다.
806번 갤러리의 장 알로가 그린 <빌라 메디치의 방에 있는 레옹 팔리에르>는 저를 깊은 향수에 젖게 했습니다.
로마의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화가의 방, 친구 레옹이 기타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 우정의 기록입니다. 젊은 예술가들이 꿈을 꾸던 그 작은 방의 공기와 고요함. 저 역시 언젠가 저토록 평화로운 창밖 풍경을 나누며, 아무런 말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충만한 침묵을 나누고 싶다는 다정한 욕심을 부려보게 됩니다.
808번 갤러리에서 만난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베네치아, 살루테 성당 마돈나의 현관에서 본 전경>은 빛과 물의 교향곡입니다. 형체가 모호해질 정도로 찬란하게 부서지는 빛의 묘사는 세상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합니다.
6. 인상파: 빛과 색채로 쓴 마지막 문장
마지막으로 메트의 심장부인 인상파 갤러리입니다.
825번 갤러리에서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을 만납니다. 무수한 치열한 점들이 모여 하나의 평화로운 풍경을 이루듯, 우리의 하루하루도 저 점들처럼 촘촘히 쌓여 비로소 하나의 '삶'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옆에는 반 고흐의 양면 캔버스가 있습니다. 캔버스 살 돈이 없어 앞뒤로 그림을 채워야 했던 가난조차 막지 못한 그의 열정은 우리네 삶의 고단함 뒷면에 숨겨진 꿈과 닮아 있습니다.
822번 갤러리는 고흐의 강렬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그린 낡은 <구두> 한 켤레는 척박한 땅을 쉼 없이 걸어온 노동자의 고단함과 숭고함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이어 <올리브 따는 여인들>과 <올리브 나무>에서 보여준 휘몰아치는 붓터치는 자연의 맥박을 직접 만지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819번 갤러리의 클로드 모네가 그린 <수련 연못 위의 다리>는 고요한 평화를 선사합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연못의 풍경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두려는 화가의 다정한 집념이 빚어낸 결정체입니다.
821번 르누아르의 소녀들과 815번 드가의 무용수들을 차례로 지나는 이 구역은 그야말로 빛과 색채가 빚어낸 영혼의 찬가입니다.
마지막으로 829번 갤러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메다 프리마베지>와 마주합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우리를 쳐다보는 아홉 살 소녀의 눈빛. 우리 딸들도 세상 앞에 이 소녀처럼 당당하길, 어떤 꽃밭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자신만의 무늬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길 간절히 빌어봅니다.
어느덧 폐관 시간이 다가옵니다. 5,000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긴 산책을 마치고 미술관 로비로 내려오는 길.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지만 머릿속은 수정처럼 맑고 가슴은 벅찬 감동으로 터질 듯합니다.
이곳 메트로폴리탄은 단순히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었습니다.
렘브란트는 고뇌를, 베르메르는 위로를, 고흐는 열정을, 그리고 어린 메다는 당당함을 제게 나눠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거장들의 숲을 빠져나와 시은이와 약속한 차이나타운으로 향합니다.
미술관의 정제된 침묵과는 다른, 날 것의 활기가 펄떡이는 그곳으로요.
어제 브뤼헐의 그림 앞에서 깨달았던 것처럼, 박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얻은 감동은 결국 나의 가장 소중하고 생생한 현실, 나의 ‘전경(Foreground)’을 더욱 사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의 오랜 동경, 메트(MET)에서 쓰는 두 번째 문장은 ‘영혼을 채운 전율’로 끝맺었습니다.
내일의 세번째 마지막 문장을 위해, 오늘의 이 뜨거움을 가슴 깊이 갈무리합니다.
5번가의 차가운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뉴욕의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