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화) | 탑 오브 더 락, 덤보, 브루클린 브리지
뉴욕에서의 열 번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 오전 MET의 정적을 지나, 오후 유람선 위에서 마주했던 그 눈부신 황금빛 석양은 오늘을 위한 완벽한 예고편처럼 보였습니다. 그 노을 아래서 저는 다짐했었습니다. 스무 살 시은이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이 작은 렌즈 안에 가장 예쁘게 담아주겠노라고 말입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셀카봉도 새로 하나 장만했었습니다. 예쁜 사진을 많이 찍어주고 싶었던 아빠의 의욕이었지요. 하지만 그 셀카봉은 여행 사흘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이번 여행에서 '딸의 예쁜 모델 샷을 남기겠다'는 제 야무진 계획이 어긋날 것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캐나다에서 홀로 유학 생활을 하던 딸은, 아빠가 예전에 찍어준 사진들을 보며 그 서툰 프레임 속에 담긴 사랑을 새삼 느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을 마음껏 찍어도 좋다고 허락까지 해주었던 터였습니다. 제 스마트폰 갤러리는 이미 행복한 기록들로 가득 찰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전 ‘탑 오브 더 락’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선명하고 장엄했습니다. 70층 높이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딸의 모습을 담을 때만 해도, 제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후, 붉은 벽돌의 정취가 가득한 브루클린 ‘덤보’에 도착했을 때 그 확신은 차가운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딸은 이제 더 이상 아빠의 모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자신의 모습이 찍히는 것보다, 그 사진들이 에세이나 SNS를 통해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딸에게 아빠의 사진은 '둘만의 사랑'일 때만 유효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공개되는 순간, 성인이 된 딸은 자신의 자아를 침범당하는 불편함을 느꼈을 테지요. 사랑의 증거를 남기고 싶었던 아빠의 진심은, 그렇게 지키고 싶은 사생활을 가진 딸의 단호한 선 긋기 앞에 멈춰 섰습니다.
한 시간 남짓 서로간 시간을 갖기로 하고 떨어져 걸었습니다. 덤보의 골목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서로를 찍어주며 웃음꽃을 피우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 유독 아프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도 저들처럼 행복하게 기록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이토록 서먹해야 할까.' 제 진심을 몰라주는 딸이 야속해 그저 숙소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아린 마음이 발끝까지 차올랐습니다.
다행히 시은이가 먼저 다가와 화해를 청해주었습니다. 같이 화해의 증거라고 동영상도 찍고, 외부 공유 없이 개인 소장만 하는 조건으로 사진 몇 장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브루클린 다리 위를 나란히 걷기 시작했지만, 제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개운치 않았습니다.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도구였던 사진이, 어느덧 ‘포스팅 금지’라는 조건이 붙은 ‘타협안’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섭섭했습니다. 다리 위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은 눈부셨지만, 스마트폰을 주머니 깊숙이 넣은 채 걷는 제 어깨 위로는 차가운 강바람만 스쳐 지났습니다.
팽팽했던 섭섭함을 느슨하게 풀어준 것은 차이나타운에서 우연히 발견한 식당 Yin Ji Chang Fen(음기창펀)’이었습니다. 원래 제 여행 계획에는 없었던 곳이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창펀과 고소한 볶음면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우리 사이에 온기를 어느정도 돌려주었고, 화해의 기분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 저는 갤러리 속 비어있는 프레임들을 찬찬히 응시합니다.
이제 저는 인정해야 합니다. 딸이 원했던 것은 ‘모두에게 공유되는 모델’이 아니라, ‘아빠의 스마트폰 속에만 소중히 간직되는 딸’이었다는 사실을요. 여행 초반에 잃어버린 셀카봉처럼, 제가 붙잡으려 했던 ‘완벽한 기록’에 대한 욕심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인가 봅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자랑할 딸 사진은 줄어들었지만, 그 비어있는 공간만큼 시은이의 독립된 자아를 존중해 주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기록된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제 곁에서 자기만의 보폭으로 걸어가고 있는 딸의 ‘존재’ 그 자체임을 깨닫는 뉴욕의 열 번째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