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첫 번째 이사

삶을 재배치하는 과정에 대하여

by 파파레인저

38년을 살면서 이사를 딱 2번 했다. 첫 번째 이사는 했다고 표현하기보다 당했다고 해야 정확할 듯하다. 고등학교 2학년 18년 동안 태어나고, 자랐던 그 동네 최초의 5층 짜리 아파트에서 신축 아파트로 입주를 했다. 당시 학생이다 보니 주도적으로 이사를 챙기지 않았다. 안방, 누나방, 거실로 구성된 18평 된 아파트에는 내 공간은 별도로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소중히 챙겨야 할 물건들은 없었다. 말 그대로 몸만 이동을 했다. 이사의 고단함은 모른 채 내 방이 생긴다는 설렘으로 학교 마친 후 빠른 귀가를 했다. 30평 대의 방 3개의 공간은 궁궐과도 같았다. 특히나 좋았던 점은 '내 공간'이 생긴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가장 먼저 선점해야 하는 건 집에 한 대뿐인 컴퓨터였다. 형제간 싸움의 이유는 단연 컴퓨터였다. 이사할 때 컴퓨터 있는 작은 방, 컴퓨터 없는 조금 큰 방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누나는 컴퓨터 있는 작은방을 선택했다. 컴퓨터 없는 조금 큰 방은 '나'라는 취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나에서 우리의 취향으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아내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동생과 자취를 하다 보니 개인 공간이 부족했다. 처음 입주하게 된 행복주택 11평의 공간은 고등학교 시절 내가 느낀 마음과 같았다. 거실과 작은 방, 작은 부엌의 공간은 우드톤의 가구로 채워졌다. 소파에 앉아 영화도 보고, 책도 밤새 읽었다.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은 부부에서 가족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생김으로써 또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거실에 있던 푹신한 페브릭 소파는 아이가 떨어질까 집에서 쫓겨났다. 지금 생각하면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에 소파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하고, 기어 다닐 때쯤에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소파도 버렸는데, 침대라고 못 버릴까?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진 당일, 해체 기사님을 불러 우리 집에서 부모님 댁으로 이동시켰다. 가족에서 아이의 파워는 이토록 셌다.


아이의 몸과 마음도 크면서 11평이라는 공간이 비좁게 느껴졌다.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 고등학교 때 이후 두 번째 이사였다. 이사의 주체가 되니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작게는 버릴지, 말지부터 크게는 이삿짐센터와 청소업체, 추가로 구입하게 되는 가구들까지 날짜에 맞게 착착 움직여줘야 했다. 이사 당일 일찍이 아내는 출근을 하고, 아이는 친할머니가 돌봐주셨다. 이른 아침부터 일사불란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파랗고 큰 접이식 상자에 짐이 담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흔적들이 하나, 둘 박스 안에 담겼다. 짐을 모두 내렸을 때 처음 입주 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1004 호라 마음에 쏙 들었던 행복한 우리 집이었다. 퇴거 전 관리사무소 직원분이 올라오셔서 최종 점검을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하였다. 새로운 집에 도착해 짐을 올리기 시작했다. 큰 가구가 많지 않아 대략 적인 위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짐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이삿짐센터 직원분이 자리를 묻기 시작했다. “이건 어디다 놓을까요?” “이건요?” “이건요?” 11평 작은 집 구석구석에 쌓여 있던 짐들이 빠르게 새로운 집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의 방이 생겼고, 옷장이 들어가고, 책장이 자리 잡았다. 거실에도 아이가 놀 수 있도록 장난감 장을 놓았다. 집은 언제나 가족의 현재와 가치를 반영한다. 누가 봐도 ”여기 아기 있어요~“라며 말하는 듯했다.


이사는 나의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재배치하는 과정안에서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가장 안쪽 공간에 부부의 책상을 마련했다. 이사하면 가장 갖고 싶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딸의 공간, 침실이 꾸며졌다. 이사의 행위는 육아와 참으로 닮아 있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무엇을, 어디에 놓을지는 고민이 필요했다. 다 사고, 다 넣을 수 없었다. 육아도 그랬다. 연인에서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는 우리가 원하는 걸 모두 갖거나, 할 수 없었다. 육아를 하며 당장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다 가지려 했다가는 창고 안에 먼지 쌓인 물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물건들이 된다. 올해 12월, 우리 가족은 세 번째 이사를 준비한다. 이번 이사는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사란 결국 가족의 성장과 변화를 담아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다. 우리 가족만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다른 추억이 쌓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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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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