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나에게 좋은 아빠는 없었다.

양관식 보다 학씨 아저씨에 가까운 나의 아빠

by 파파레인저
사진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중

"잘할 수 있지? 아니다 싶으면 빠꾸, 냅다 집으로 뛰어와. 아빠 있어."

"너는 다 잘해, 아빠가 다 알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로 온종일 마음이 뭉클하다. 엄마 오애순의 사랑도 빛났지만, 묵묵히 아내와 딸 금명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아빠 양관식의 모습이 더욱 빛났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금명이가 그늘지지 않았던 이유는 아빠의 역할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아빠 양관식보다 학씨 아저씨 쪽에 가깝던 나의 아빠. 어릴 적을 회상하며 아빠의 모습에서 양관식의 티끌이라도 찾아보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알고리즘의 탓인지 《유퀴즈 온더 블럭》에 눈길을 사로잡은 쟈기님이 나온다. 현직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배태랑 쟈기님이다. (*유퀴즈는 인터뷰 대상을 쟈기님이라 부른다.) 소방관이라는 직업도 인상적이지만, 아빠를 따라 소방관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아빠는 그게 참 멋있어요. 가족들 걱정 될까봐 별일인데, 별일 아닌 일처럼 이야기를 해요."

아빠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들 배태랑 소방관.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가 보인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든든한 아빠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안타까운 것은 나에겐 그런 아빠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릴 적을 되돌아보면 우리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 날이면 온갖 짜증을 자식들에게 풀었다. 아빠의 짜증에 늘어간 건 눈치와 불안이요, 자신감은 나날이 떨어졌다. 어린 나이에 "왜 우리 집에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어디 가서 말도 못했다. 우리 집 빼고는 모두가 행복한 듯 보였다.

어른이 되어 친구들과 어릴 적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집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위로가 되었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아픔이 있다는 사실에 더 끈끈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나의 불안이 정점으로 치닫던 순간이 있었다. 우리 집 안방문이 닫히던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부부싸움을 하셨고, 누나는 자기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어린 시절의 나는 닫혀 있는 문고리를 흔들며 엉엉 울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문이 열렸고, 엄마는 바닥에 내동댕이쳐 있었으며, 빨간 피가 보였다.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 하셨고, 한동안은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셨다. 가장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시기에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불안 그 자체였고, 두려움이었다.


20대 시절 스쿠터를 타고 45일 동안 전국 일주를 한 적이 있었다. 잠자리는 텐트나 마을회관, 노인정에 부탁했다. 울진에 도착해 길을 여쭙기 위해 빵집에 들어갔다. 당시 행색이 그지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인연이었을까? 한 아주머니께서 여행 중이냐고 먼저 물으셨다. 전국 일주 중임을 이야기하니, 방 한 칸을 흔쾌히 내주셨다. 오랜만에 편안한 잠자리와 진수성찬 덕에 재충전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마음속의 짐이었던 아빠 이야기를 1시간 30분 동안 나눴다. 나의 이야기에 경청해주시고, 다독여주시고, 안아주셨다. 처음 만난 분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울진 장재화 어머님. 알고 보니 울진 지역에서 가족 상담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온 마음 다해 사회에 봉사하고 있었다. 조영은 작가의 《가족의 세계》에서 '가족의 상처를 떠나 보내기 위해선 우선 그 상처를 마주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라는 말처럼 아빠로 인한 상처를 처음으로 마주했다.

장재화 어머님께서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전에 꼭 아빠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며, 아빠를 꼭 모시고 울진에 오라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아빠와 직접 방문하진 못했지만, 꽁꽁 숨겨만 두었던 상처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앞둔 명절. 큰집 아들 경력이 쌓인 만큼 무얼 해야 할지 빠삭하다. 평생 평생 며느리로서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시아버지, 시어머니 제사상에 열심히 수저를 놓고 있었다. 작은 엄마께서 알아서 착착 돕는 나를 보며 "참 잘해, 결혼해서도 애한테나, 아내한테 참 잘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혼자 흐뭇해하고 있는데 아빠가 불쑥 말했다. "쟤도 결혼하면 나랑 똑같을 걸." 내가 아빠랑 똑같을 거라고? 명절은 덕담이 오고 가는 자리일 텐데, 이건 악담이 틀림없었다.

그날 밤, 아빠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호히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 나 또한 불안했다. '정말 나도 아빠처럼 될까?' 어쩌면 그 불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닮고 싶지 않은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부정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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