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4장의 편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by 파파레인저
4c8aba5171d8d.png 사진 출처 : 아임웹

전국일주를 다녀온 뒤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청년들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찾다 보면 상담 프로그램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상담사에게 속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울진 어머니와의 만남 이후 내 안에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들을 더 이상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상담사의 제안이었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보는 건 어떨까요? 전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말에 펜을 들었을 때, 손이 떨렸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을 여는 것 같은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네 장의 편지를 썼다. 보내지 않을 편지, 읽히지 않을 고백들을 말이다. ‘편지를 쓰는 건 말하지 못한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다. 나는 그것이 전달되지 않더라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제동의 『너에게 하지 못한 말』 에서 읽은 이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나의 일방적인 분노와 원망이 담겨 있었다. 미화할 필요 없이, 편지들은 욕설과 못할 말들로 가득했다. 아빠의 폭력적인 언행과 행동에 불안했던 어린 나의 모습,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남긴 상처를 솔직하게 풀어냈다. 아빠는 유독 엄마가 없는 날이면 궁시렁거리는 날이 많았다. 혼자 하는 말이었지만, 뾰족한 아빠의 말들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꽂혔다.


『상처받지 않는 능력』에서 더글러스 스톤은 "우리는 종종 아버지에게서 상처받지 않는 법이 아니라, 상처 주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 문장이 두 번째 편지를 쓸 때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빠가 나에게 남긴 상처들, 그리고 그 상처들이 어떻게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써내려갔다. 세 번째 편지에서는 더 구체적인 사건들을 꺼내들었다. 안방 문이 닫히던 그날, 엄마의 울음소리, 내가 느꼈던 공포...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종이 위에 던졌다. 글씨체는 점점 거칠어졌고, 종이는 눈물자국으로 얼룩졌다. 이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과라는 말을 적었다."아빠는 나에게 사과해야 해.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어"라고 말이다. 마지막 편지는 짧았다. 앞선 세 장의 편지가 몇 페이지씩 길게 이어졌던 것과 달리, 네 번째 편지는 한 페이지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사과를 원해. 내가 원하는 전부야." 이 문장을 적고 나서야,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네 장의 편지는 모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인정과 사과, 내 상처가 실재했음을 확인받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었다.


우연히 엄마와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편지의 내용 중 일부를 보여줬다. 엄마는 "이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며 깜짝 놀라셨다. 뒤이어 "이거 아빠 주면 기절한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쓴 편지 4장은 마치 폭탄과도 같았다. 집안을 발칵 뒤집을 만한 폭탄을 어린 나이에 가슴에 품고 지냈다. 성인이 된 후에야 폭탄을 몸 밖으로 꺼낸 것이다. 엄마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우리 가족이 평범해 보이도록 해왔는지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감정은 뒤로한 채 살아온 엄마. 그녀의 지친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은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침묵의 증거였다. "그냥 이대로 두자. 네 아빠도 나이가 들어 많이 부드러워졌어." 엄마의 간곡한 말에는 오랜 세월의 체념과 수용이 묻어 있었다. 마치 엄마 하나만 참으면, 견디면 모든 것이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다고 믿어온 가족의 암묵적 약속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균형을 깨뜨릴 수 없었다. 비록 그것이 불공평하고 한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진 평화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그 편지들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어쩌면 그 편지들은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진실보다 평화를 선택한다. 한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진 불완전한 평화일지라도 그것을 깨뜨리는 용기보다 유지하는 안전함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각자의 가정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편지는 전달되지 않았지만, 쓰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일종의 해방이었다.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는 거울이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는 이유일 것이다. 전달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그 과정 자체가 우리의 내면을 정화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결국 나는 아빠 같은 아빠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육아 에세이가 이렇게 무거워도 되는건가?


파파레인저 스레드 : https://www.threads.com/@paparanger_

파파레인저 블로그 : https://blog.naver.com/spapa_21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5화안타깝게도 나에게 좋은 아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