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기간 처가댁에 방문을 했다. 우연히 처가댁 어른들과 식사를 할 자리가 생겼다. 한참 식사 중에 대선 후보들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가족 간의 금기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정치 이야기다. 갑자기 큰 이모부께서 "엄 서방은 대통령 누구 뽑을 건가?"라고 물으셨다. 내가 난처할까 봐 다른 이모님께서 비밀 투표를 뭣하러 묻냐고 했지만, 질문은 다시 나에게로 닿았다. "그냥 뭐 젊은 사람들 생각도 궁금하니까. 그래서 누구 뽑을 건가?" 처가댁은 전라북도에 위치해 지역적으로 정치색이 뚜렷한 곳이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선뜻 답을 못했다. 보통 정치 성향은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지역적으로, 직업적으로 강제 주입을 당한다. 나의 첫 선거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 아빠는 "아들, O 번 뽑아라"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아빠 말대로 O 번을 뽑았다.
한국 리서치에서 2025년 EAI 양극화 조사에 따르면, 20~30대의 정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대 41.2%, 30대 47.4%로 나타났다. 나도 크게 관심이 없으니까.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최근에 김누리 교수의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를 읽으며 '죽은 물고기만 강물의 흐름에 따라 흐른다'라는 구절에 빨간 인덱스를 붙여둔다. 우리나라는 유독 경쟁이 심한 나라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좋은 대학과 직업을 목표로 10대 시절을 올인한다. 다 같은 '공부' 재능을 받아 태어난 게 아닐 텐데 말이다. 게다가 철저한 주입식 교육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정답을 암기한다.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생각이 없는 아이로 성장하는 거다. 이러니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야 가질 수 있을까.
반면, 독일은 아이들을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육성하고, 인성교육, 직업교육, 정치교육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학창 시절 내내 비판 의식을 기르며, 자신의 생각을 쌓아가는 데 10대 시절을 보낸다.
과연 우리 교육제도가 단번에 바뀔 수 있을까? 3,4년 뒤 딸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걱정이 앞선다. 당장 가정에서부터 자신의 생각을 쌓아가는 아이로 키워야겠단 결심을 한다. 학원에서 만난 자기 생각과 주관이 뚜렷한 아이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괴짜 느낌이 난다는 거다. 하지만 오롯이 아이를 관찰하면 학창 시절을 잘 즐기고 있음을 느낀다. 난타를 배워 공연을 다니고, 도자기로 그릇을 만들어 스트레스를 풀고, 철학책을 읽고 좋은 문구를 읊기도 한다. 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속이 터진다. 철저히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를 포함한 학부모들은 '괴짜 아이'를 키우며, 이해하고, 인내하는 과정을 겪으며 지켜봐 준다. 교육제도가 바뀌지 않아도, 부모가 바뀌면 아이 또한 변한다.처가댁 어른들과의 식사 이야기로 돌아가 정돈을 하며 고민을 하다 이모부님께 한 마디 이야기를 드렸다. "어차피 OOO일 수 있지만, 후보들 공약과 정책 방향도 공부해 보려고요." 누구는 얕은 지식으로 어떻게 판단하느냐 할 수 있지만, 남들이 다 맞다고 하는 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 내가 직접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긴 후 결정해 보려 한다. 딸 가진 아빠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