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할 때 글을 쓰지
얼굴이 뻐근하다. 눈동자가 건조해 톡 하고 튀어나올 듯하다. 무엇이든 지속하려면 즐거워야 한다고 했는데, 글쓰기란 나에게 언제나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우리의 습관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인상 깊다. 글쓰기가 생활이 되면 ‘글 쓰는 엄두섭’이 될 텐데, 키보드에 손을 얻고 있으면 종종 큰 벌을 받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목덜미는 뻐근해지고, 심장은 두근거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안 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그것도 아니다. 결국 원하는 걸 하지 못했을 때 영원히 고통받는 게 인간이다.
글을 쓸 때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할까? 내 기준에 남들이 쓰는 좋은 글과 짜임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내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글을 보고 비웃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휩싸인다. 어릴 적부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된 적이 없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지도,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 하는 학원 일을 시작했다. 처음 학원 일을 하며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직업적으로 쓸모를 인정받아 좋아하지 않지만, 학원 일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글쓰기는 즉각 반응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올바른 글을 쓰고 있는지 팔로워 수, 좋아요 수에 집착하게 된다.
시험 기간 공부 전에 책상 치우느라 체력을 다 쓰는 일처럼 글쓰기도 비슷하다. 육아 에세이를 쓰기 위해 목차를 다듬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어느 정도 글 쓸 준비가 되었는데, 정작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 못한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맴돌다 말도 못 하고 포기하는 꼴이다. 등신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이야기 보다 내면의 불안에 대해 써본다.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아빠의 모습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어렵다고 포기하는 아빠는 아닐 테다. 아빠가 원하는 일을 끝끝내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결국 해내는 사람은 불안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이 우리의 선생님이 되도록 선택할 수 있다.’ 피어스 스틸의 말처럼 불안을 글쓰기 선생님 삼아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인사이드 아웃 2의 주인공은 불안이었다. 불안감 때문에 하키 대회를 앞두고 더욱 연습에 매진한다. 하지만 불안감으로 친구들과의 관계도 대회도 망쳐버린다. 라일리는 불안감에 휩싸여 그릇된 선택을 한다. 불안을 이겨내는 일은 마주하기 싫은 일을 마주하는 일이다. 글쓰기가 막막할 때 불안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 이 또한 나의 글쓰기이다. 솔직한 마음이다. 결국 무엇이든 써 내려가면 경직된 근육들이, 호흡들이 온전히 돌아옴을 느낀다. 완벽한 글은 아니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음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되려면 글을 써야 한다. 운동선수가 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가장 단순한 원리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상상 속 세상에서 무언갈해보지도 못하고 주저 않게 되겠지. 지금 불안한가? 눈 똑바로 뜨고, 불안을 마주하자. 오늘도 불안과 함께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