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거거 스마트폰 좀 내려놓읍시다.
아이에게 책을 가까이하게 만들고 싶다면 먼저 질문해봐야 한다. “아이에게 정말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는가?” 독서 습관은 재능이 아니라 분위기에서 자란다. 억지로 책을 머리에 넣는다고 독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조용히 앉아서 읽으라고 혼낸다고 책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아이가 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밖에 없는 공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20대 후반 독서모임을 통해 가장 먼저 배웠다. 그 시절, 나는 매주 주말마다 집에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토요일 아침 8시면 이미 40~50명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식적인 공부 모임이 아니라, 책이라는 매개로 사람들의 삶이 부딪히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펼치게 되는 장소였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삶의 ‘정답’을 말하듯 군림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결국 나를 책 가까이에 두었다.지금 돌아보면 그 공간이 나에게 준 핵심은 단 하나였다. 사람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 안에서 책을 읽는다.
정작 내가 독서를 깊이 시작한 건 군복무 시절이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오로지 종이책과 볼펜만 있는 폐쇄적 환경. 근무 외 시간에는 잡지, 소설, 에세이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마음이 복잡하면 일기를 썼다. 불만, 불안, 답답함, 막막함, 미래에 대한 공포가 섞인 글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일기 덕분에 군생활을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의 독서,글쓰기 습관도 결국 ‘억지’가 아니라 ‘분위기’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이를 책과 글에 가까이 두고 싶다면, 아이가 저절로 책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도 독서모임이었다. 연애를 목적으로 간 게 아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렸다. 4년 동안 연애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책을 선물했고, 카페에서 나란히 책을 읽었고,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건네며 함께 감탄했다. 결혼 후 나의 꿈은 작은 서재를 갖는 것이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특별한 태교 대신 책을 많이 읽었다. 도서관, 독립서점, 카페를 오가며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었다. 그 시기 읽었던 건 대부분 부모 교육 책이었다. 그래서일까? 6살 딸은 책을 무척 좋아한다. 책 좋아하는 부모에게 태어나 자연스럽게 책 가까이에 있었다. 집안 곳곳에 책을 뒀다. 식탁 한 켠, 거실 테이블, 침대 옆, 신발장 위… 딸은 그 책들을 아무거나 집어 들고 “아빠 읽어줘!“라며 무릎에 올라온다. 이것이 독서 교육의 정답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고 싶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란다. '스스로 스마트폰을 안 보고 책을 골라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어른도 스마트폰을 못 놓는다. 길거리, 버스, 엘리베이터,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을 본다. 어른도 못 하는 걸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디지털 기기는 어른에게도 중독적이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길 바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독서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부모가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는 것.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부모가 책 읽는 사람이 되는 것. 부모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가 책을 좋아하길 바라는 건 모순이다. 부모는 아이가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의 손에 스마트폰이 달려 있다면 그 가정의 과목명은 ‘디지털 생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책을 잡는다.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정이 책이라는 문화를 기반으로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외출할 때 책을 꼭 챙긴다. 카페에서 대기 시간이 생기거나 식사 후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자연스레 책을 펼친다. 딸도 자기 가방에 책 한 권을 넣는다. 여행을 갈 때면 반드시 독립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씩 산다. 물론 더 싼 책은 온라인에도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직접 고르고 만져보고 선택한 책은 의미가 다르다. 여행 내내 들고 다니며 읽는다. 부모가 책을 읽을 때 아이도 책을 읽는다. 심심하면 책을 선택한다.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힌다. 여기서 책 선택은 8:2의 비율로 한다. 8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 2는 부모가 추천해주고 싶은 책. 9:1도 괜찮다. 핵심은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책만 읽히는 교육을 하려다 보면 오히려 책과 멀어진다. 독서는 억지로 시작되지 않는다.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5살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읽고 감명 깊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삶에 적용하고 싶은 문장을 나누는 모임. 지금 이미 분위기는 만들어져 있다. 아이는 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이에게 책을 읽게 했다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글쓰기다. 글쓰기를 억지로 교육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쓰고 싶어지게’ 하면 된다. 사람은 언제 글을 쓰는가? 성인이 되어 일기를 쓸 때를 떠올리면 대부분 두 가지 순간이다. 정말 행복하거나, 정말 힘들거나. 나는 군 생활 시절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힘든 감정이 나를 글로 이끌었다. 그래서 일기장이 여섯 권이 넘는다. 그 안에 나의 2년이 모두 들어 있다. 훈련을 나갔다가 일기를 쓰다가 간부에게 빼앗긴 적도 있다. 일기를 읽은 중령이 “큰일날 놈이구만!”이라고 말하며 간부 욕을 쓴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나는 그날도 일기를 썼다. ‘일기를 빼앗긴 날’, ‘일기가 찢긴 날’이라고 적었다. 그것도 글쓰기였다. 감정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아이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다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된다. 요즘은 한 줄 일기, 두 줄 일기 등 간단한 일기장도 많다. 우리 가족은 새해가 되면 모두 일기장을 산다. 다꾸 용품이 워낙 예뻐서 아이들도 흥미를 가진다. 중요한 건 절대 일기를 보지 않는 것이다. 일기는 아이의 유일한 비밀 공간이다. 그 공간을 침범하면 아이는 평생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아이가 마음을 온전히 풀어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글쓰기 교육의 본질이다. 자기 마음을 쓸 줄 아는 아이는 글쓰기 공부가 필요 없다. 그저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아이의 독서, 글쓰기 습관은 ‘부모가 만든 분위기’에서 자란다. 억지로 시켜서 되는 건 없다. 책이 가까운 부모 밑에서는 책이 가까운 아이가 자란다. 책을 읽는 집에서는 읽는 아이가 자라고, 글을 쓰는 집에서는 쓰는 아이가 자란다. 아이의 독서력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가정의 공기를 바꿔야 한다. 분위기를 만들면 습관은 저절로 따라온다. 오늘부터 단 한 가지라도 바꿔보면 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집어 들고, 아이가 닮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그 작은 변화가 아이 인생 전체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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