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바뀐 게 아니라, 자란 거였어

아빠가 되며 이룬 또 다른 개그맨의 꿈

by 파파레인저
?src=http%3A%2F%2Fimage.nmv.naver.net%2Fblogucc28%2F2014%2F11%2F19%2F1439%2Fb472ae97751d62bcecbac731735407723a86_ugcvideo_270P_01_16x9_logo.jpg&type=sc960_832 출처 :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김제동의 리플해주세요' 중

초등학교 장래희망 조사란에 나는 당당히 '개그맨'이라고 적었다. 그 마음은 1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누가 봐도 장난꾸러기였다. 놀이터에서는 하지 말라는 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렸고, 덕분에 팔 다리가 성할 날이 없었다. 친구들에게도 장난을 쳤지만 밉상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절친이었던 동선이와는 “우리 꼭 개그맨 되자!”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둘 다 입을 꾹 다문 채 멀뚱멀뚱 하늘만 바라보던 기억도 난다.중학생이 되어서는 개그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내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의 PD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고, 답장은 의외로 간단했다. “공부를 잘해야 해.” 그 한 마디에 PD의 꿈은 바로 접었다. 꿈 없이 보내던 중학교 시절, 어느 날 텔레비전을 통해 김제동을 만났다.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보조 MC로 데뷔한 그는 ‘김제동의 리플해주세요’라는 코너를 이끌며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텔레비전 화면 속 그의 모습은 내게 새로운 꿈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레크리에이션과 진학을 목표로 잡았다. 친구들이 졸업여행을 가던 날, 나는 대학 실기 시험을 보기 위해 홀로 길을 나섰다. 하지만 결국 실기 시험을 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난 열심히 ‘하는 척’만 했던 거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에 빠져 겉멋만 부렸을 뿐,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스스로 꿈을 밀어냈다.그로부터 2년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코미디 연기학과에 진학했다. 1학년 때 꿨던 꿈을 22살이 되어 다시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3~4년의 준비 끝에 개그맨이라는 꿈도 놓게 되었다. 다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치게 되었고, 누구보다 '재미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꿈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결국 내가 바란 건 하나였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지금, 나는 아빠가 되었다. 못다 이룬 개그맨의 꿈을 딸아이 덕분에 이룬 것 같다. 나만 보면 깔깔 웃음을 터뜨리는 딸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세상에 이토록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육아는 나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주었다. 바로 작가가 되는 일. 아빠로 살며,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글로 남기고 싶다. 어릴 적엔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지금은 아이 덕분에 인생의 진짜 웃음을 배우고 있다. 누군가를 웃게 하는 삶, 그 꿈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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