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육아의 정론을 배우다.
“여보, 나 영화 보러 가도 돼?”
집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 《승부》를 보러 가도 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흔쾌히 “다녀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탈에도 일말에 양심은 있어야 하는 걸 아빠라면 안다. 영화 예매 시간은 6시 25분. 현재 시각은 4시 40분이었다. 딸아이를 간단하게 샤워 후, 밥을 먹이고, 양치까지 …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이때만큼은 chatgpt 보다 내가 빠르단 생각을 한다. 아이에게 간단하게 샤워를 하자고 말했는데, 갑자기 욕조에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한단다. ’ 물놀이에, 머리도 감기고 …’ 시간이 촉박함을 느끼지만, 육아에서는 고민보다는 고가 옳을 때가 많다. 아이는 어차피 물놀이를 하고 싶기에, 여러 번 회유를 하는 동안 이미 물놀이를 하고도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육아 4년 차 베테랑의 짬바다. 간단하게 물놀이를 하고, 목욕을 시킨다. 15kg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긴다. 아직 얼굴에 물이 쏟아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딸을 위해 조금 기다려준다. 기분 좋게 샤워 후 이른 저녁을 준비한다. 메뉴는 김치전. 아내가 아이 목욕 시키는 동안 김치전을 구웠다. 어? 김치전의 모양이 떡인지, 전인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이 또한 지나간다. 나는 곧 나가야 하니까. 6시 20분이 돼서야 문 밖을 나선다. 그리고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영화 《승부》는 1990년대 초 스승 조훈현 9단과 제자 이창호 9단의 바둑 대결을 배경으로 실화를 다룬 영화다. 영화 소재인 바둑에 바자도 모른다. 오목, 알까기면 모를까. 영화를 보는 동안 바둑 두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 바둑을 알았더라면 ‘ 더 재밌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을까. 영화에서 조훈현 9단은 젊은 나이에 신기한 바둑을 두는 아이 이창호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어린 이창호의 먼 훗날 바둑 두는 모습이 궁금하여 제자로 들인다. 훌륭한 스승아래, 훌륭한 제자가 있음을. 스승과 제자의 상황인 영화를 보고 부모 사이를 떠올린다. 천상 아빠다. 학원을 운영하며 참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만난다. 1차 아이를 상담하고, 2차 부모를 만난다. 참 신기하게도 아이의 말하기는 부모와 연관성이 많다. 표현력이 좋은 아이들은 부모님과의 대화에서도 자신의 생각 표현을 잘 한 아이들이다. 반대로 말하는 데 자신감이 결여된 아이들은 부모님과의 말하기에서도 자신감이 없다. 아이의 말을 뚝뚝 자르거나, 말하기도 전에 모든 걸 이루어 주니 말할 이유가 없다. 램프의 지니가 따로 없다.
아이가 만나는 첫 스승은 부모다. 조훈연 9단은 아이의 바둑 실력을 보고 선택했다지만, 아이는 선택하는 게 아니다. 되려 선택을 받는다. 뱃속에서의 10개월부터 스승의 역할은 시작된다. 둘째를 임신 한 부모들은 ‘태교가 무엇이뇨’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처음은 다르다. 온갖 정성을 아이에게 쏟는다. 우리도 그랬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태교 관련 영상을 보고, 클래식을 틀고, 책을 읽어준다. 하지만 안 하던 짓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일상을 편안하게 살기로 선택한다. 아내와 자주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오래 나눈다. 어떤 부모가 될지,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를 쓰다듬으며 “아빠야~”하기보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목소리가 닿기를 바란다. 10개월 열심히 대화를 나눈 덕일까? 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엄마’로 시작해서 ‘아빠’로 끝이 났다. 이때 이미 아빠 바라기로 태어난 듯 보인다. 무엇이든 힘이 들어간 것보다 힘을 빼야 오래오래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오래도록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를 보러 나오기 전 저녁 시간. 5살이 되고 어린이집 낮잠이 사라진 후로부터 잠이 쏟아질 때면 괜한 짜증을 부린다. 밥을 먹다 김치전에 뭇국에 말았던 밥을 흩날리듯 뿌려댄다. ”하, 나가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괜히 영화 시간을 일찍 예매했나 싶은 생각을 하며 눈치를 본다. 아내는 침착하게 훈육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에 들듯 밥알을 하나씩 더 튕기기 시작한다. 영화 《해바라기》의 명대사 ”병진이 형은 나가있어.. “처럼 아내는 ”여보는 나가.. “라는 짧은 말로 분위기를 잡는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 훈육은 아내가 주로 한다. 마음이 아프단 이유로 아내에게 미루기만 한다.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아이는 치즈를 먹고 싶다며 생떼를 피운다. 거실에서 울고 불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옷을 입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날을 잘 못 잡았나 싶다. 영화 중간에 아내에게 물으니 금방 괜찮아졌다고. 저녁 먹기 전후로 간식을 주지 않기로 했는데, 울고 불고 한 상황에서도 가족 간의 규칙을 아내는 지켜냈다. 참으로 대단하다. 아내는 타협이 없다. 다시 영화《승부》의 내용으로 돌아가 스승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가 바둑 결승에서 맞붙는다. 무심(無心)하되, 성의(誠意) 있게. 각자만의 바둑 스타일로 대국을 시작한다.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운다. 패배해도 일어난다. 패배해도 도전한다. 훌륭한 스승의 역할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모 품에서 떠나갈 때를 떠올려 본다. 부모이자 첫 스승으로써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무심(無心)한 듯, 성의(誠意)를 다해 오늘도 아이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