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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Jun 29. 2024

사과는 빠르게, 인정은 바르게

전화위복에도 타이밍이 있다.

“엄마, 오늘은 내가 쏠게.”

“오, 딸이? 오랜만에 좋지~”

부모님과 딸, 이렇게 세 분의 손님이 오셨다.

딸이 대접하기로 하고, 이런저런 메뉴를 주문해서 맛있게 드시고 계신다. 오붓한 가족, 나도 흐뭇하다.

어?! 뭐지, 갑자기 세 분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저기 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


치즈계란말이에서 이물질이 나왔다. 아주 작고 딱딱한 갈색의 조각,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이물질이다.

바로 사과를 드리고, 주방에 확인해 보겠다고 드시던 음식을 갖고 들어갔다.

“여보야, 음식에서 나왔어요. 이거 뭐야?”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던 남편이 이마를 탁 친다.

“아, 이거! 아... 나무 뒤집개에서 떨어졌나 보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다. 계란말이를 하는 뒤집개의 옻칠이 벗겨졌는지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고, 떨어진 조각과 뒤집개의 모서리를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아오, 어떡해, 어떡해~ 빨리 나와서 같이 사과드려요.”

남편도 주방에서 바로 나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드렸다.


하지만 손님들은 입맛을 잃었고,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쏘겠다고 했던 딸 손님은 표정이 점점 더 굳어진다.

정말 죄송하다고, 다른 음식으로 바로 준비해 드리겠다고 하였지만 이미 마음맛도 떠난 손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무안해하실 정도로 계속 사과했고, 계산은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손님들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시다가, 그럼 술값만이라도 받으라고 하신다.


가시기 전에 손님들께, 어쩌면 구차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씀을 드렸다.

“저희도 이런 실수가 처음이라 당황해서, 대처가 미흡했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와 주세요. 저희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무 뒤집개는 바로 버렸다. 부랴부랴 가게 근처 마트에서 실리콘 뒤집개를 사 왔고, 지금까지도 조리도구는 실리콘이나 스테인리스 제품만 사용하고 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계란말이 사건은 가게에서 겪은, 가장 곤혹스러운 실수 중 하나다.


딸 손님은 유학을 가셨고, 부모님 손님은 감사하게도, 정말 만회의 기회를 주셨다.

이젠 우리 가게의 단골이 되셔서 각자의 지인을 데리고 오기도 하시고, 주변에 소개도 해 주신다.

오가는 길에 빵도 한 봉지 안겨 주시고, <나 혼자 산다>에 나와서 가보셨는데 탄도항의 일몰이 아름다웠다며, 나들이 다녀온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우리는 맛난 디저트를 서비스로 보답하고, 도수가 높은 술을 좋아하시는 두 분께 새로운 고량주 샘플을 드리기도 한다.


어쩌면 두 분은, 다시 안 볼 손님이 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때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 사과를 했고,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곧바로 환경을 수정했다.

이 작은 동네, 행여 길에서 뵙더라도 진심을 담은 정직한 사과를 했다면,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미소를 담아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먼저겠지만, 실수 이후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려는 나지만, 일상 속에서 실수는 끊임없이 생기고 당황도 많이 한다.

뭔가에 씐 것도 아닌데, 유난히 실수 퍼레이드인 날도 있다.

주방에서의 실수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빠른 수습만 하면 큰일이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손님들께 저지르는 실수들.


왁자지껄한 상황에서 주문을 잘못 듣고 엉뚱한 음식이 나온 경우도 있다.

초음파 세척기를 사용하다 보니 간혹 유리잔에 실금이 가는데,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갖다 드리는 경우가 있다. 근데 진짜 실수는 바꿔드린 잔도 금이 간 잔이었다. 살핀다고 살폈는데, 제대로 실수했다.

계란 음식에 계란껍데기 조각이 나온 적도 있고,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간 일도 있다.

물론 손님 본인의 –가늘고 긴~~~ 갈색의-머리카락이 들어있었는데, 음식 값을 내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황당무계한 경우를 맞닥뜨리기도 한다(우리 부부는 둘 다 짧고 검은 커트 머리).


일순간 마음은 아그작 바그작 마르고 타지만, 물색없이 당황하며 허둥대기보다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담아 사과를 한다.

내 실수가 아닌 것 같을 때, 망설여질 때도 일단 사과를 하고 상황의 분위기를 어루만진다.

작은 가게일수록 빠른 수습과 알맞은 대처가 먼저이다.

변명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긍하는 태도가 손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매번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친한 손님이 우연히 이런 광경을 보셨는데, ‘머리를 숙이는 것이 싫어서 나는 자영업은 못할 것 같아.’ 그런 말씀을 하신다.

사과를 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이에게 수월한 일은 아닌가 보다.


나는 가게에서 매번, 머리를 숙인다고 나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 먼저 인정한다고 내가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우리 부부끼리의 실수도, 성을 내고 탓을 하기보다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빨리 처리해야 할 것을 먼저 한다.

서로 따지고 우기기보다는, 실수를 만회하고 수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실수나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사과하기에는 때를 놓친 것이 아닌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과에 늦은 때란 없는 법. 사과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용기이고,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사과 그게 뭐라고 자존심을 부릴까.

사과는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일이 결코 아니다.

아직 내게 남은 일생에도 어느 순간 사과를 해야 할 날들이 또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감사할 일도 많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태도는 진심의 사과와 인정인 것 같다.

세상이 변해도, 진심은 변치 않는 삶의 지혜일 것이니.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거겠지.

배움과 자람에 게으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일상에서 매일.

보고, 느끼고, 배운다.

* 6월 27일, 목요 연재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tmi: 임파선염, 급성 편도염으로 수 일 고생 중입니다).
아둔한 글 초보는, 여분의 연재 글을 준비해 두는 지혜도, 실력도 없네요.
부디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과는 빠르게, 인정은 바르게 살겠습니다.)
* 출처: ‘글반장’님 블로그(https://blog.naver.com/9banjang_)


*커버 이미지: <진짜 사과드립니다! 와글이의 귀여운 사과(‘말랑’님)>_카카오이모티콘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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