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뻔펀한 홍사장 Jul 06. 2024

애(baby)가 없어도 애(愛)는 있어요<2>

배고프면 오세요, 얼큰한 김치우동 한 그릇 같이 먹어요~

이모오~ 떼면 안 돼요!

우리 꼬마 손님들이 또 작품을 남기고 가셨다.

현관 쪽 냉장고 벽에 전시된 새로운 작품들.

이번에도 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다. 고 작은 손으로 약속, 도장, 복사까지 받아내고 간다.


접착력이 약한 마스킹테이프가 떨어지면 작은 두 작가님이 실망할까 봐, 뻔뻔이 이모는 그들이 간 후 꼼꼼하게 다시 붙여놓는다. 행여 찢어질세라 작품을 하사 받은 것처럼 신중하게.

뭔가 덕지덕지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소중하고 예쁜 작품은 나만 보고 말 일이 아니다.

자랑해야지~

뻔뻔화랑 컬렉션_ⓒ뻔뻔

♡ 너무 깨끗해요.

♡ 이번 여름, 이모 삼촌 화이팅~

♡ 너무나 예쁘고 멋져요.

♡ 과자가 너무 맛있어요.

♡ 여기 꼭 와 주세요, 이모 삼촌 화이팅!

♡ 엄청나게 음식이 빨리 나와요.

♡ 짜계치가 메인 메뉴예요.

♡ 너무 친절해요.

♡ 사랑해요~


‘그래, 얘들아~ 엄청나게 음식이 빨리 나오고 친절한 건 맞지만, 너무나 예쁘고 멋지고 깨끗하지는 않아. 그리고 짜계치가 메인 메뉴가 되면 많이 곤란해;;;

대신 이번 여름은 너희 덕분에 이모 삼촌이 화이팅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고마워~’


사실 우리 가게,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

남편과 시아버님이 셀프로 벽을 칠하고 타일을 붙이고 가벽을 세우고 난간을 설치한,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인테리어이다.

9년 차가 되니, 타일도 금가고 페인트도 벗겨지면서 점점 더 빈티가 난다. 그 빈티를 빈티지로 봐주시는 사랑스러운 단골들이 계시는 것뿐, 아이들의 눈에도 절대 깨끗하다고 볼 수 없을 가게임을 잘 알고 있다.

데코타일이 벗겨진 바닥은 청소를 한 티도 잘 안 나고, 49년이나 된 아파트 상가니 구조나 시설도 신축 상가들에 비해서는 한참 떨어진다.


그럼에도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는 마음새를 꼬마 손님들도 읽어준 것일까, 더 깨끗하라고 긍정의 확언을 남겨준 것일까. 남녀공용의 조악한 화장실도 매우 불편했을 텐데.

아무튼지 사랑의 메시지는 황송하다. 포털사이트에서 별 다섯 개의 맛집 평점을 받은 것보다도 기분이 좋다.


이번 주는 매우 한가하다.

월초가 월말보다 조용하긴 하지만 비가 와서 아직 휴가들을 간 것도 아닐 텐데, 우려가 될 만큼 매출이 적다.

그래~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고, 한가한 김에 끼니를 챙겨보자.


빨간 김치우동 다글다글 끓여-물론 남편이- 저녁 안 드셨다고 잠깐 들르신 단골분과 합세해 우리 부부는 뜨끈하게 잘 먹고, 개시도 못 한 주제에 반주까지 주고받는다.

같이 드신 단골은 친구들에게, 집 앞에 편하게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맛집이 있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신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살맛 나는 일인지’ 우리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시며 계속 있어달라 하신다.

이 맛에 동네 장사, 단골 장사를 하는 것 같다.

김치어묵우동_ⓒ뻔뻔

크어어, 얼큰하니 좋다.

두피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에어컨 바람은 시원하다.

손님은 아직 없어도 이 순간을 감사함으로 여기면, 이런 한가함은 여유라는 이름의 선물이 된다.

넘치는 여유가 내 몸뚱이에도 들러붙었다. 요즘 옷이 몸에 낀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거겠지.


세탁해야 할 옷이 산더미로 쌓였다면 내게 입을 옷이 많다는 거고, 주차할 곳을 걱정하고 있다면 내게 차가 있다는 거고, 도시가스 요금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거다.

치워야 할 테이블과 그릇이 많다면 가게가 바빴다는 것이고, 부가세가 많이 나왔다면 그래도 매출이 나쁘지 않았다는 거다. 작년에도 먹고 만했다는 거다.


주말에만 오는 손님들은 만석이 되어 북적북적한 모습만 보신다.

표면적으로는 매출이 좋아 보이니, 우리 부부 주변에도 사공이 점점 늘어간다.


프랜차이즈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정도 음식 맛이면 성수동 같은 곳에도 충분히 먹힐 텐데 대출 땡겨서 옮겨라, 하나 더 내서 오토(가게를 직원에게 맡기고 최소한의 관리만 하는 영업 형태)로 돌리면 되지, 남편이 명품백도 안 사 주더냐는 등의 얘기도 한다.

코로나 영업제한 기간에 받은 대출금 갚느라고 빠듯하다, 아직은 옮길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애먼 소리라며 통 믿지들 않는다.


가까운 손님이나 친구들은 가끔 남편에게 코인투자는 막차라도 탔냐,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공부해야지, 마흔이 넘었으니 필드는 못 나가도 스크린골프는 쳐야지 뭐 하냐, 인맥 관리 해야 하지 않냐는 등, 그들만의 조언과 연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 나이쯤 되면, 다들 중고 골프채 한 세트쯤 장만하나? 우리 부부의 행복의 기준이 너무 낮은 걸까?

나는 지금, 충분히 살.만.한.데.


사람마다 ‘살 만하다’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소유와 위치, 가치와 평가에 따라 각자 느끼는 행복의 크기도 다를 것이다.

쭈욱 맞벌이를 하다가 코로나를 지나, 중간에 남편과 합류하게 된 나에게 이 가게가 주는 행복은, 단연코 단골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작다’는 뜻의 <소확행>이 아닌, ‘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로 나에게 <소확행>이다.

클리셰적인 표현도, 입에 발린 말도 아니다. 정말 그렇다.


생맥주 단골손님이 집 앞에 새벽까지 하는 맛있는 주점이 있다고 자랑했다는 얘기를 해 주신다(글 앞부분의 김치우동 손님과 다른 분~). 이모네 치즈계란말이와 병맥주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고 시원하다고 친구들을 우르르 끌고 와 주는 청년 손님도 있다(똑같은 병맥주인데, 우리가 남달리 맛있다나? 심지어 이모가 아니라 누나로 불러주어 더 좋다!). 가게의 부족한 인테리어를 보완해 주고자, 친히 오셔서 작은 조각들을 아기자기하게 전시해 주는(심지어 리뉴얼까지!!!) 꼬마 손님도 있다.

그 조각들이 모여 나의 소확행이 된다. 이 모든 분들이 우리 가게의 자산이다, 자랑이다.


<애(baby)가 없어도 애(愛)는 있어요> 1편의 글에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을 인용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써 보고 싶다.

동네 맛집을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라고.

9년 차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단골들 덕분이다. 온 마을의 도움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이 자리에서 영업할지는 모르지만, ‘집 앞에 그런 단골집 하나쯤 있으면 사람 냄새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바로 그 ‘단골집’이 되고 싶다.

편안하게 어울리고 때로는 나의 부족한 모습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정서적인 유대를 쌓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비밀유지 잘해요, 선은 넘지 않아요~).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적한 시간대.

어딘가 자신의 속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할 공간.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따뜻함과 위로.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느지막이 문을 열어도

“영업 끝났습니다.” 소리 들을 걱정 없는.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을, 그.런.곳.


그 마음으로, 뻔뻔이 여기 있어요.

새벽까지 불을 켜고 이곳에서 기다릴게요~

이전 13화 사과는 빠르게, 인정은 바르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