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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Jul 13. 2024

친절한 공지

& 불친절했던 상상

지난 토요일, 갑자기 하루 휴업을 했다.

자고 일어난 남편의 목젖이 사랑방캔디만큼이나 엄청나게 커져있었다.

편도가 아니고, 정말 ‘목젖’이 부어올랐다. 목젖은 기도를 치고 혀에 걸쳐진 기괴한 꼴을 하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무서웠다.

오후 1시 20분. 집 근처 이비인후과의 진료는 2시까지. 세수도 양치도 생략, 모자만 쓰고 일단 동네 의원을 빠르게 다녀온 남편의 손에는 진료의뢰서가 들려있었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계속 부어오르면 기도가 막힐 수도 있으니,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 보라는데?!”


토요일 오후 2시 이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학병원이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무 응급실이라도 가야겠기에 정부 민원콜센터와 119에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현재 서울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이 있을까요?”

전공의 파업은 둘째 치고, 이비인후과 진료 자체가 응급으로 볼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한다. 다행히 일요일에 정상진료를 하는 병원이 멀지 않게 있어서 다음날 일찍 가 보기로 했다.

조마조마했다. 숨쉬기가 힘들다고 하면 어쩌지. 밥도 제대로 못 삼킬 것 같은데 괜찮을까.

호흡기의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 뜨거운 국물의 간을 볼 수 없으니, 주말이지만 하루 쉬기로 했다.


우리는 일단 가게로 갔다.

빠른 배송으로 온 물건을 냉장/냉동에 분류한다. 몇 시간만 지나도 신선도가 떨어질 애들이라 쉬기로 해도 가게에 왔어야 했다.

‘오늘은 쉰다.’고 손 글씨도 써 붙인다. 작은 A4 한 장이지만 될 수 있으면 내용까지 적어두는 편이다.

한두 번 이렇게 써 놓으니, 그냥 휴무라고 붙여놓는 것보다 손님들이 더 이해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다음 날 가게에 오셔서는 ‘아팠다며, 이젠 괜찮아?’, ‘데이트는 잘했어?’ 등 안부도 물어봐 주시고, 갑작스러운 휴무에도 너그럽게 넘어가 주신다. 종이가 붙어있으면 이번에는 뭐라고 쓰여있는지 궁금해서 꼭 읽고 지나가신다는 단골도 계셨다.

이웃 가게 두어 곳에도 토요일에 갑자기 왜 쉬는지 미리 귀띔해 둔다. 그래야 자동으로 안내가 된다. 단골들이 ‘주말인데 뻔뻔 오늘 왜 쉬냐’고 물으면 그네들이 우리 대신 친절하게 설명해 줄 테니.

그동안의 공지들(1)
그동안의 공지들(2)
그동안의 공지들(3)

가게를 지나치던 단골손님이 차를 멈춘다.

“오늘 6시에 예약할 건데, 돼?”

ㅡ“아, 죄송해요. 저희 병원에 가야 해서 오늘 급하게 쉬어요.”

“아니 왜, 어디가 아파?”

남편은 아~ 하고 목젖까지 보여주며(굳이...;;;) 상황 설명을 한다. 손님은 차에 타라고 하시곤, 우리 부부를 집 앞까지 태워주셨다. 걸어도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이고 유턴이 불편한 위치였는데, 기꺼이 데려다주신 손님의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


어차피 갈 수 있는 응급실은 없고 다음날이나 되어야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남편은 불안해하지 말라고 한다. 기도가 좁아지면 119의 도움을 받기로 하자고.

쌀미음과 의원에서 처방해 준 항생제를 먹고, 남편은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잤다.

겁이 많은 나는 빨래를 개면서, 다음날 진료까지 너무나도 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가게일은 토요일이지만 차치물론 하자. 근데 토요일이잖아. 토요일인데, 토요일이니까, 갑자기 ‘하루 쉬면 매출이 얼마야’하는 생각에 이른다. 주말의 매출은 평일의 두 배인데, 토요일이 아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위급은 아니지만 응급인 남편의 상태를 에 두고 매출을 아쉬워하고 있는 아내라니. 정나미가 떨어진다.

다행히 남편의 숨은 고르다. 자고 있으니 내 마음을 들키진 않았겠지.


밤은 길었고, 나는 남편의 호흡을 지켜보느라 잠을 설쳤다.

예약을 해 둔 터라, 대학병원의 대기는 길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이 진료를 기다리고 받는 짧은 시간 동안 불안함과 두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큰 병은 아니겠지. 편도 제거처럼, 목젖도 시술이라도 하자면 어떡하지. 그럼 가게를 쉬어야 하잖아. 그렇게 되면 7월 매출은 어쩌지. 아픈 남편도 걱정되고, 닫아야 하는 가게도 걱정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복잡한 생각이 들어 버렸다.

내가 아파도 남편은 혼자 가게일이 가능하지만, 남편이 아프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어마어마한 무기력함이 명치를 가격하는 것 같았다. 이름만 무기력이지 타격감은 굉장했다.


‘남편이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납하러 가자, 심각한 건 아니래.”

다행히 나의 공상, 망상, 상상은 금세 꼬리를 밟혔다.

스쳐 지나간 오만가지 생각들은 부끄러웠고, 아무 거나 먹어도 된다고 한 것은 정말 반가웠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은 게 제일 중요하다”라고 남편의 어머님은 늘 말씀하셨다.

그래, 심각한 게 아니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다행이야. 돈이야 벌면 되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잖아. 그깟 하루 매출이 뭐 별거라고, 별거인 양 심각하게 생각했던 나의 30분이 당신에게 미안해.


가자.

수납하고 얼른 맛난 거 먹으러 가자.

그리고 일해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오늘은 가게 열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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