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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Jul 20. 2024

서슬 퍼렇던 새벽

힘들다... 깨진 유리 청소ㅠㅠ

조마조마했다.

언성이 높아지며 말다툼을 하던 손님 일행끼리 싸움을 시작했다.

와장창창 파파팍

일행 중 한 분의 손님이 분을 못 이겨 테이블 위의 병을 팔로 밀어버렸고, 서너 개의 소주병은 바닥으로 낙하하여 산산이 깨졌다. 마치 산탄총의 총알이 사방으로 퍼지고 튀듯, 유리조각들은 가게의 온 곳으로 무질서하게 흩어졌다.


내 마음도 파사사삭 깨져버리는 것 같았다.

‘이걸 어째, 언제 치워.’ 이렇게 생각할 틈도 없다. 일단은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다른 손님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인 순간이다.

나는 모든 청소 수단을 동원해 얼른 조각들을 주워 모으고, 닦고 또 닦고를 반복했다.


유리파편은 청소하기가 정말 까다롭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치웠다고 해도 미세한 조각들이 테이블이든 바닥이든 어디에나 박혀 있어서 빠르고 신중하게 치워 누구라도 그 서슬에 다치지 않아야 한다.

조각들은 신문지에 싸서 버리기 좋게 묶어놓고 사방으로 흩어져버린 조각들을 찾아 기어코 검거해 낸다. 한 번에 완전 소탕은 어렵다.

아마 구석에 숨고 박혀버린 사금파리들이 며칠은 더 발견될 것이다.


싸움을 시작한 손님들은 결국 가게 밖에서 드잡이질을 한다. 지구대에 신고를 해야 하나. 주먹까지 오가는 것은 아닌 그냥 멱살 잡고 몸씨름을 하고 있는 정도이니 지켜보기로 한다. 새벽의 112는 상가아파트 주민들에게 큰 민폐니.

그 손님들의 테이블이 비워진 틈을 타서 우리는 얼른 정리를 마무리한다.


한참 힘겨루기를 한 손님 중 두 분은 가고, 남은 한 분이 계산을 하며 소지품을 챙기신다.

“아, 이사장. 정말 미안해. 내가 치워야 하는데.”

손님은 근처에서 요식업을 운영하셔서 우리도 여러 번 가서 먹었던 곳의 사장님이다.

“아이고... 이러시면 진짜, 저희 이제 못 받습니다.”

싫은 소리 못하는 남편이 이 정도로 말하는 거면, 매우 매우 곤란함을 표현하는 거다.

“그래그래. 미안해. 내 다음부터는 안 올게. 못 오지.”


‘아... 이렇게 또 새벽 단골 한 분이 끝나는 건가.’

남편의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한 명의 손님과 한 테이블의 매출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새벽마다 팔아주러 자주 오시던 고마운 손님이었으니. 하지만 언쟁이 잦아,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처럼 언제고 터질지 모르는 불안 불안한 팀이긴 했다.


안 오시면 어쩔 수 없고, 또 오신다면 그때 또 아무 일 없듯 반갑게 인사하게 되겠지.

여긴 동네니까, 동네 장사니까.


다음날,

어제 청소를 그렇게 여러 번 했는데도 사방에서 파편들이 수도 없이 발견되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남편의 지인들이 테이블에서 싸움이 붙어 테이블을 자빠뜨려 버렸다. 술병만이 아니라 버너, 냄비, 음식, 수저, 물컵 등 테이블 위의 모든 것들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심지어, 무려, 만석이었다!!!

하.......

심각한 상황이었다. 엉킨 두 명을 뜯어말리는 남편의 손등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몸싸움은 주변을 아랑곳 않고 점점 가열되었다.


일단 일행들이 한 명씩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가고, 가게 안의 모든 손님들께 재빨리 사과하며 넘어진 테이블 주변부터 서둘러 치우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과 최대한 멀리 테이블을 밀어 세워두고, 주울 것은 줍고, 나머지는 다 밀대로 밀어 휴지통에 쓸어 담았다.


식어버린 분위기, 달아난 술맛, 가게의 공기가 싸해졌다. 손님들께 너무 죄송해서 연신 사과를 하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한 후에 테이블마다 서비스를 제공해 드렸다.


치우면서 뭔가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 잘못이 아닌데, 가게 잘못이 아닌데, 내가 사과할 일이 아닌데.

근데 내 가게니까, 우리 손님이니까, 얼른 사과해야지. 수습도 내 몫이고, 고개 숙여야 하는 것도 나니까.

그렇게 사과의 스킬이 늘어만 간다.


싸운 두 명을 포함한 그 지인들은 며칠 뒤 아무 일 없는 듯 또 오셨고 (남편에게 사과는 했음), 나는 여전히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여긴 동네니까, 동네 장사니까.


자영업은 렇다.

특히 술집은 더 이렇다.

술기운에 일행끼리 시비도 붙고, 옆 테이블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싸움이 붙는다. 발단은 정말 별게 아니다. 목소리가 좀 커서, 어깨를 살짝 쳤다고. 스트레스를 한껏 받은 하루를 보낸 어느 손님의 화살촉은 엄한 사람에게 겨눠진다.

우격다짐을 넘어, “너 밖으로 나와.”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도 목격한다.


가게 창 밖에서는 때론 권투가, 유도가, 레슬링 경기가 벌어진다. 원치 않는 1열 관람을 하면서 나는 조용히 112 다이얼을 누른다.

싸움을 말리면서 누군가는 다치기도 한다.

남편이나 내가 다치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 싸우는 손님 외의 손님들이 다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늘 긴장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어쩔 수 없이 주변을 주시하게 된다.


게다가 이곳은 유동인구가 적고 초. 중.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서로 산재해 있는 독특한 동네.

심지어 남편은 이 동네에서 초. 중. 고를 졸업했다.

남편도 모르는 동창이 가게에서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 고 보니 친형, 친누나의 친구고, 유심히 보니 선후배여서 얼렁뚱땅 같이 술잔을 기울이게 되는 곳.

모르는 손님이라고 조금만 소홀하게 해 드리거나, 가게에서 시비 좀 붙었다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가는 금세 입소문이 나고, 동네  어플에 평판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어떤 일이 있었대도, 발걸음을 주신다면 또 아무 일 없듯 반갑게 인사하게 될 거다.

여긴 동네니까, 동네 장사니까.

단골손님들로 살아가는 우리는 자영업자 부부니까.


이것이 그냥 밥집이 아닌, 술.집.의 치명적인 숙명인 것 같다.


오늘은 주말.

손님들께 두 손 모아 애원하고 싶다.

아..., 제발...

싸움은 해도 좋으니, 술병만은 깨지 마세요.

제발, 제발요~~~

ⓒUnsplash, CHUTTERSNAP


*커버 이미지_ⓒUnsplash, Super Sna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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