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뻔펀한 홍사장 Jul 27. 2024

술꾼의 가오

애증의 야장

우리 가게의 홀은 9평,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다.

만석이 되거나 주말처럼 붐비는 상황 때문에, 봄가을에는 야장(야외테이블)도 두어 개 깔아 둔다.


가게는 1층이어도 계단 서너 개를 오르내려야 해서, 그게 몇 시간이 되면 꽤 힘든 일이다.

테이블이 한 개만 늘어나도 매출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만, 내 무릎도 같이 후들거리고, 한 손에 서너 잔씩 생맥주를 나르는 손목도 무릎 못잖게 힘이 빠져만 간다.


야장은 날씨에 따라, 너무 춥거나 더우면 사용할 수가 없다.

어닝이 지붕의 역할을 해 주어도 비가 들이차는 구조이기 때문에, 장마철에는 테이블을 접어두는 편이다.

올해 장마도 역시 잦은 호우에 야장을 깔아 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 애초에 ‘비를 맞으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사장님, 우리 테이블 밖으로 옮겨도 될까요?”

안에서 드시던 손님 두 분이 흡연을 위해 나갔다 오시더니, 비도 그치고 밖이 시원해졌다고 야장으로 옮긴다고 하신다.

ㅡ“이따 또 비가 올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유, 술꾼들은 밖에서 마시는 거 좋아해요. 비 오면 맞지 뭐.”


테이블을 옮기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더구나 홀에서 홀이 아니라, 실내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더 불편하다. 계단도 있고, 난간을 돌아 음식 및 모든 것들을 다시 갖다 드려야 한다.

장마철 내내 접어둔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고, 먼지를 닦고 기본 세팅을 준비해야 한다.


ㅡ“잠시만요, 준비되면 옮겨드릴게요.”

“미안해요, 사장님. 수저와 술잔은 우리가 갖고 갈게요.”

해가 지니 야외가 선선해지긴 했지만, 아직 습도가 높아 밖에서 먹고 마실만한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손님이 원하신다면 옮겨드려야 하는 게 동네 장사다.


하늘은 어둑해지고 툭툭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신 손님 테이블을 창밖으로 기웃하며 살피게 된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데 주거니 받거니 잘들 드신다. 빗소리와 낭만인가.


주말도 아닌데 테이블이 빠지는대 또 손님이 들어오신다. 홀서빙에 집중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는데,

“아, 사장님. 정말 미안해요. 우리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어닝 쪽에 가까운 손님들의 한쪽 어깨가 흠씬 젖어있다.

하…, 홀에 테이블 하나 남았는데.

다행히 만석은 아니라 옮겨드릴 수는 있지만, 이번에는 싫은 표정을 살짝 내비칠 것이다.


그래야 안다. 방실방실 웃으며 당연한 듯이 또 옮겨드리면, 손님들은 모른다.

어디에서도 테이블을 두 번 옮기는 것은 실례일 수 있다는 것을.


작년 초겨울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장님, 우리 밖에 나가서 먹어도 될까? 얼굴로 술기운이 막 올라오네.”

ㅡ“아유, 밖에 추운데. 괜찮으시겠어요? 안 되실 것 같은데?”

“응, 무릎담요 좀 주면 괜찮을 것 같아. 시원해야 많이 마시지. 야장이 또 낭만 있잖아.”

ㅡ“.”

초겨울 추위에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고 서둘러 준비를 한다.

“어우, 시원해, 시원해. 술 다 깬다. 여기서 2차 다시 하지 뭐.”

“아….”


딱 견적 나온다. 안 봐도 비디오다. 술자리가 파하지 않는다면, 한 시간도 못 되어 다시 들어온다고 할 날씨인데.

삼십여 분 뒤. 문이 열리고 뒤통수에서 콧소리가 들려온다.
“으어~ 미안해 사장님. 추워서 안 되겠다. 우리 다시 들어가야겠어.”

그럼 그렇지.

오돌오돌 떨면서 무릎담요를 돌돌 말고, 우르르 다시 들어오셨다.


그래도 손님이 원하면 다!시! 옮겨 드려야지, 아직 술자리가 한창인데.

표정관리를 하려고 애쓰면서 안으로 세팅을 해 드렸다.

추울 거라고 미리 말씀드렸는데, 난 분명히 말했는데.


위와 같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가게는 천정형 에어컨이 아닌지라, 에어컨의 위치에 따라 테이블마다 약간의 온도차가 있다.

그래서, 일행과 상황에 따라 자리안내를 하려고 신경 쓴다.


분명히 ‘이 자리가 제일 시원하니, 추위 많이 타시면 벽 쪽 자리로 앉으시라’고 안내해도, 괜찮다고 하시다가 춥다고 옮겨달라고 하신다.

분명히 ‘지금 밖이 추우니 그냥 안에서 드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안내해도, ‘술꾼이 가오가 있지, 안 죽어, 안 죽어’라고 하시다가 슬그머니 옮겨달라고 하신다.


난 분.명.히. 말했는데.

더우면 덥다고 옮기신다.

추우면 춥다고 옮기신다.


두 번 이상 옮기는 건, 정말 좀 아니지 않나? 몇 번이고 옮겨드려야 하는 건가? 내가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것인가?

싫은 내색은 차마 할 수 없지만, 사실 힘든 일이다.


손님들은 늘 오던 가게이니 편해서 요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표정관리가 안 된 적도 있다.

‘술집이라 이런가? 밥집이라면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번듯하고 규모가 큰 곳이면 사장 대우 받으려나?’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무리한 요청이나 무례한 행동을 마주할 때, 매 순간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다.

마음이 표정이 되고 태도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항상 마음부터 살펴보는 나지만, 때론 자존심도 상하고, 홀의 상황을 몰라주는 남편에게 짜증 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어? 지금 이곳이  삶의 터전이자 밥줄인 것을.

거리에서, 마트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동네분들이 다 우리 가게의 손님인 것을.

초/중/고등학교 동창, 학교 선/후배, 옛 직장 동료, 엄마 친구 아들, 심지어 전 여친/남친까지 다 마주치는 곳이 이 동네인 것을.


나를 번거롭게 하기 위해 일부러 테이블을 옮겨달라고 하신  아닐 테니까.

그저 날이 좋아서, 비가 내려서, 바람이 불어서 술맛이 달았을 뿐이겠지.

술꾼의 가오가 정신을 지배하는 날이니까 그랬을 뿐이겠지.


순간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이 자리에서 뻔뻔의 사장으로 있는 동안은, 좀 더 너그럽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

바쁘면 같이 서빙을 도와주고, 술이며 음료는 알아서 꺼내 드시는, 알뜰한* 당신들이 계시기에.


이번 주말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슨 사건이 벌어질까?

‘일’이 아니라 ‘’이 되어 버린 9평 공간이 주는 하루를 감사함과 설렘으로 품고,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해 보자.


*알뜰하다: 2)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참되고 지극하다.


*[뉴스1], (…)물폭탄에 해탈한 시민들, 22.08.09, 소봄이 기자



이전 16화 서슬 퍼렇던 새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