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자전거 ㅣ written by 셀린
경계를 넘어서야 보이는 또 다른 세계
나는 호기심은 많은데 안타깝게도 겁이 많은 편이다. 겁도 많고 걱정도 많다.
그래서 뭐든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예상 가능한 영역 내에서, 아는 데까지만 정확히 보이는 부분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는 편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고. 잘 모르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본능적으로 두려우니까.
처음 따릉이를 타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자전거로 내 마음의 선이 허락한 곳까지만 갔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경계를 나누는 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그 선을 넘으면 안된다고 금지한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그러면서도 저 길을 지나면 어떤 풍경이 있을까. 어떤 길이 있을까. 매번 궁금해했다. 몇 날을 거친 내적 고민을 마치고 어느 날, 평소 따릉이를 돌리는 반환점을 지나쳐 앞으로 더 나아갔다. 그러다 마주친 고양이가 그려진 이정표. 휘황찬란하지도 않았고 잘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는 표지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쓰여있었다.
“어서오십시오. 고양시입니다. 환영합니다.”
그렇다. 그 날 나는 마음의 선도 넘고 실제로 시의 경계도 넘었던 것이다.
그것 참 별 일도 아니네?
어릴 땐 하면 안 되는 일, 그냥 해야만 하는 일이 참 많았다.
여자니까 하지 말라는 일, 여자니까 해야 하는 일이 제일 이해가 안 갔고 동생이니까. 나이가 어리니까 하면 안 되고 해야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왜? 라고 물어보는 것도 허용이 안 됐다. 왜요? 라고 물어보는 애는 예의 없는 애였으니까.
정말로 궁금했다.
그건 누가 정한 건데요?
내가 왜 그걸 지켜야 하는데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하면 안 되는 일, 그냥 해야만 하는 일 투성이다. 대신 지금 나에게는 그것들을 안 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할 지 말 지 선택할 자유도 있다.
나는 때로 하지 말라는 일은, 왜? 난 그렇게 하고 싶은데? 라고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한다. 그리고 하라는 일은, 왜? 난 그렇게 하기 싫은데?라고 생각하고 은근슬쩍 안 한다. (물론 이 일들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적인 범위 내에서.)
그러면 알게 된다.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일,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막상 (안) 해보니 걱정한 거에 비해선 별 거 아니었던 일도 있고, 무작정 (안) 했다가 혹독한 결과를 얻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나는 나만의 경계를 만들고 있다.
이 경계는 누군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위한 것도, 내가 나갈 수 없게 스스로 가두는 경계도 아니다. 다만 나를안온하게 지키기 위한, 나를 납득시키기 위한 경계다.
경계는 결국 내가 그 경계를 넘어서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그 경계를, 한계를 억지로 넘어서라고 강요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정한 방식이 있고 내 속도, 나의 ‘때’가 있는 거니까.
물론 경계를 넘는다는 게 생각처럼 나를 어제의 나와 완전히 다른 나로 만드는 건 아니다.
자전거를 잘 못 타는 내가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자전거로 미지의 길에 도전한다고 해서 천지가 개벽하는 것도, 드래곤볼을 모두 모은 손오공처럼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이 경계를 넘은 나는 또 다른 경계를 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그러기로 정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어제와 그만큼 다른 나다.
이것은 경계 안일까 경계 밖일까. 물멍
경계. 여기와 저기 사이
시간의 경계. 강의 경계.
다시 안온한 경계 안으로
그리고 따릉이
-경계선을 만들고 또 넘어가는 일. by 셀린
퇴근 후 자전거
직장인 셀린과 루비의 사이드 프로젝트. 두 직장인이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발견한 장면을 번갈아 가며 기록합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이메일로 총 12회 연재합니다. (6.10 -8.26)
퇴근 후 자전거 발행인
따릉이로 한강을 달리는 셀린 @bluebyj
미니벨로 라이더 루비(청민 부캐) @w.chung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