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중학생 때부터 발병해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한,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요 병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때도 취업 준비를 굉장히 대충 했다. 하기도 싫었거니와, 내가 어떤 회사에 가야 하는지도 아예 몰랐지.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4학년이 됐다. 인생이 슬슬 꼬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외부 강사들을 불러 취업 특강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거라도 안 하면 나는 큰일 난다, 이 마인드로 특강을 열심히 들었다. 그래도 목표 직무를 하나라도 정해놔야겠지 싶어, 군대에 있을 때 인사과에서 일했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임시 목표 직무를 HR로 정했다.
당연하지만 특강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됐다. 특강에서는 직무도 직무지만 산업군 선택을 그렇게나 강조했는데, 아니, 어느 회사를 가든 인사 직무는 있을 텐데, 철강 회사가 됐든 식품 회사가 됐든 다 똑같은 것 아닌가?
만약 저 말의 저의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로 가라는 것이라면 나는 일적으로 관심 분야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 잘 될 산업군에 미리 줄을 타라는 뜻이었다면,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걸 듣고 있질 않았겠지.
그렇게 아무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그래도 사람 인생이 어떻게든 되더라. 학교 건물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해외 취업 국비 연수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를 봤다. 나는 보자마자 이거다!라고는 안 했지만, 한국의 치열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서류 준비, 필기, 1차~최종면접―이 일련의 귀찮은 프로세스를 진행할 바에는 그냥 편하게 연수받고 해외로 튀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연수비는 더럽게 비쌌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꽤 합리적이기도 했고 말이다(물론 비행기표 사고 뭐 하다 보니 500은 날아가더라).
그래서 신청했다. 4학년에 시작해 학기 중에는 매일 4시간씩 연수를 받고, 겨울 방학 때는 매일 8시간씩 연수를 받으며 남들과는 살짝 다른 취준 생활을 했다. 참고로 면접은 어마무시하게 쉬웠다. 거진 프리패스라고 봐도 된다. 다시 말하지만, 영어가 된다면 미국(아니면 싱가폴)에 가자.
참고로 회사 면접을 보고, 비자 발급을 위해 대사관에서도 면접을 또 봐야 한다. 연수에서 강사가 대사관 면접을 3번 떨어지면 미국에 영원히 못 간다고 겁을 주길래 좀 쫄았는데, 대사관도 바보 같은 짓만 안 하면 다 붙는다. 이후에 비행기표를 사고, 원룸 알아보고, 친구들 만나서 술을 진탕 마시다보니 어느새 출발일이 다가왔다.
캐리어 2개를 끌고 인천공항에 갔다. 거진 반나절의 시간 동안 비행기에 앉아 있었다. 진짜로 죽을 맛이었다.
LAX에 도착해 공항 풍경을 보자 생각보다 후졌다. 인천공항은 정말 깔끔하고 잘 만든 공항이다.
입국심사에서 갑자기 우람한 흑인 심사관이 나에게 꼬리 질문을 해 좀 쫄았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