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첫 여행노트가 파리가 되었나?
뜨거운(?) 사랑으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날 낳으신 부모님께서는 어른의 세계에 남들보다 빨리 입장을 하신 탓에 내가 자라는 동안에는 남들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가족여행은 꿈도 꿀수가 없었다. 두 분은 그게 못내 미안하셨는지, 대신 학교에서 해외방문 프로그램이 열리면 모조리 신청을 해주셨고, 아빠의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는 아빠차를 타고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느라 바쁜 어린시절을 보내게 해주셨다. 그러한 두 분의 노력덕분에 나는, 극단적 I타입 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즐길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반면 부모님과 떨어져 호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해외는 교환학생 프로그램들로만 다녔던 오빠는, 나랑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여행은 곧 하나의 미션이나 일쯤으로 여겼다.
아마도 자라온 환경이나 누적된 경험의 차이구나 싶었지만,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남을 시작한 이상 나는 오빠에게 여행의 참 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연애초기부터 (잠자는 시간도 쪼개 쓰던 대학원 시절이었지만!) 언제든 휴일만 생기면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일정 기간별로 여행지들을 찾아 기획하고 정리해뒀었다. 물론 그 기획에는 무엇보다 각 여행지마다 오빠가 충분히 관심을 보일 만한 장소들과 더불어 오빠 선호도에 맞는 액티비티와 프로그램들을 포함해 낯선곳에서의 즐거움을 자극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휴일에 어디 가지 않고는 못견디는 여자와 한 3년즈음의 연애와 6년가까운 결혼생활을 하고나니 지금은 어느새 나보다 더 다양한 여행플랫폼이나 홈페이지를 섭렵하고, 각종 해외렌터카 이용법과 사고대처방법을 마스터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우리 부부가, 아무리 코로나라는 역병이 도는 시기에 프랑스로 왔다고는 하지만,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생활을 하기엔 프랑스는 너무 좋은 유럽 여행의 요충지였다. 우린 휴가가 주어질 때마다 이 요충지에 머무르는 장점을 이용해 스위스며 이탈리아며 차를 타고 열심히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하지만 5년여의 프랑스생활을 청산할지도 모르는 시기가 되어, 마지막 버킷리스트로 나만의 여행노트를 만들려고 보니 결국 첫 노트는 돌아돌아 파리였다.
유럽엔 그 나름대로의 매력마다 각각 대표하는 도시들이 있다.
해리포터와 셜록홈즈의 나라, 나의 덕질의 시작인 영국을 필두로, 지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예쁜 자연경관을 가진 스위스, 맛없는 음식은 죄악이라는 나에게 최고의 '선'만을 보여줬던 이탈리아, 바다 그 자체로도 비행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그리스, 싼 물가에 아른아른대는 야경이 착한 체코, 그 밖에도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등 각자의 매력이 또렷한 나라들이 하나의 대륙을 이룬곳이 유럽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단순히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결성된 정치적 기구라고 표현되기엔 너무 아깝다.
어찌됐든 그 수 많은 나라들을 제치고 왜 하필 파리를 여행해야 할까?
프랑스인들과 부데끼며 살아보면, 프랑스를 미워할 수 밖에 없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유럽여행을 계획하는데 꼭 넣어야 하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그 역시 파리이고, 한 곳만 골라야 한다고 말해도 파리이다. 나에게 있어 파리는 파리이기 때문이다.
각 도시마다 여행의 컨셉이라는게 있다.
예를들면 식도락이라던지, 아님 와인이라던지, 미술관이나 박물관 투어, 쇼핑, 카페투어, 힐링여행, 공연, 등등 말이다. 유럽에서 이러한 컨셉들을 대표하는 1순위 나라들은 다 다르게 존재한다. 하지만 top3까지로 넓혀서 살펴보면 그 모든 컨셉에서 상위권 공통분모는 유일하게 바로 파리다.
누벨퀴진 형식의 요리법을 제안한 폴보큐즈의 나라이자, 세계 와인 생산량의 17%를 담당하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 그런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는 반고흐와 모네, 르누아르 등이 한동네 친구였던 예술의도시이면서, 약130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곳에 모여있는 유일무이한 도시이다. 생떽쥐베리와 해밍웨이의 도시이기도 하고 말이다. 파리는 명품의 도시지만, 또 보석들이 숨어져 있는 빈티지매장의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과 같은 수도이기에 번잡하고 복잡한 곳이지만, 수많은 공원과 세느강변가가 도시 어느곳에서든 손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힐링 도시기도 하다. 거창하고 그럴듯 하게 말했지만 결국 파리가 여행지로 매력적인 이유는 여행의 컨셉을 어느것으로 잡든, 누구와 함께하는 여행이든, 서로다른 목적의 여행자들까지도 함께 어울리고 즐길수 있는 그런 도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