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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eltina Jun 06. 2023

4화. 파리에선 꽃을 사도 됩니다.

파리여행 준비물

예쁜 꽃은 보면 기분이 좋다. 

특히나 시장이 열리는 토요일 아침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제철(?) 꽃들이 한창이다. 주머니 여윳돈이 충분하면야 당장이고 한아름 사서 집안 곳곳에 놓아두면서 3~4일간의 행복을 맛보겠지만 꼬깃꼬깃 가져온 지폐 몇 장으로 치즈와 몇 가지 제철 채소, 과일들을 사고 나면 꽃은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늘 채소와 과일 따위에게 밀리는 꽃이지만, 파리에선 얘기가 다르다. 


1~2년 전 한 플랫폼에서 오디오북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2분가량 파리 여행준비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파트가 있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말해야 하는 짧은 시간인지라 내가 생각할 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수적인 것 5개를 나열했다. 


1. 석회수필터 1개

2. 피크닉매트

3.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슬리퍼

4. 폼클렌징

5. 미니미우산


이 중 석회수필터는 누군가에게는 유난이다 싶을 수 있지만, 1순위 준비물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 준비 없이 왔던 여행에서 석회수가 맞지 않아 온몸이 간지럽고 트러블이 올라와 행복해야 할 여행기간 내내 고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러블까지는 올라오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석회수로 감은 머리가 푸석푸석하다가 금세 며칠 야근한 듯한 떡진(?) 머리가 되어버려 기분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때에는 린스를 이용해 볼 수 있긴 하지만, 부피도 크지 않고 설치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석회수 필터 한 개 정도 챙겨 오면 두루두루 정신적으로도 평안한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계절과 상관없이, 요즘들어 부쩍 더 갑작스러운 비가 자주 오는 파리이기 때문에 귀여운 미니미한 우산도 (귀찮더라도!) 필수다. 그리고 이전 3화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파리 숙소들은 어메니티나 실내슬리퍼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 3번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일회용 슬리퍼와 4번 폼클렌징 역시 챙겨 오면 유용한 준비물이다. 의외로 바디워시나 샴푸, 화장품은 현지에서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브랜드들로 구입이 간편하게 가능하다. 하지만 의외로 쫀쫀하고 뽀득뽀득한 폼클렌징 찾기가 어렵다. 세안 후에 촉촉하게 남아있는 제품이 피부엔 더 좋다고는 하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닌 찌든 때와 덕지덕지 발라놨던 썬크림을 기필코 다 닦아내야 속이 시원한 나 같은 사람들은 뭔가 미끄덩한 느낌의 폼클렌징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거든.



여하튼, 또 꼭 챙겨 와야 하는 준비물이, 바로 가벼운 피크닉매트!

파리에서 피크닉 세트를 예약하고 사용하려고 보니, 다양한 구성품을 챙겨주는 대신 금액이 생각보다 비싸더라. 근데 사실, 파리에선 바게트나 간단한 디저트류에, 마트나 꺄브(cave)에서 싸지만 달달한 와인 한 병 사들고, 과일 몇 알 챙겨서 잔디밭에 펼치면 그마저도 충분한 피크닉이 되고, 그림이 되기 때문에 다른 구성품이 많이 필요 친 않다. 다만 이곳에선 대충 얇은 천이나, 그마저도 없으면 잔디밭에 그냥 앉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감성(!) 피크닉 매트는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꼭 챙겨 올 준비물 2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다시 꽃 이야기로 돌아와서, 

파리 시내를 여행하다 보면 꽃을 사서 돌아다니는 파리사람들이 참 많다. 자전거 앞쪽에 바게트와 툭 하고 꽂혀있기도 하고, 꽃뭉치가 한쪽에 삐쭉 튀어나온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마치 꽃이 파리지앵들 만의 표식같이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파리에서 피크닉을 하고 여행을 할 때만큼은 나도 꼭 꽃한뭉치를 산다. 다발이라고 쓰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 시장에서는 보통 5~6송이 정도의 꽃을 셀로판지를 이용해 하나로 둘둘 묶어서 팔기 때문에 다발보다는 뭉치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또 그게 참 매력 있다.). 그리고는 여행하는 내내 에코백에 콕 꽂아 들고 다니다가, 피크닉 매트에 준비물들을 펼치고 사진을 찍을 때, 무심하게 툭 얹어놓으면 바로 파리지앵스러운 사진이 완성된다. 

바게트와 꽃, 에코백은 서로가 서로를 돋보여주는 오브제들인 듯하다. 


사진뿐만 아니라 기분도 훨씬 좋아진다. 가뜩이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이, 꽃 한뭉치로 더 로매틱한 여행처럼 느껴지는 마법에 빠지게 된다. 꽃과 파리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극 사실주의의 여행보다는, 일상을 벗어나 여행만이 줄 수 있는 무드에 취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일상도 이리 고달픈데, 여행만큼이라도 꿈꾸던 곳에서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느껴봐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말이다. 



사실 '파리여행은 감성이 다다.'라는 말이 있다. 

칭찬이기보다는, 기대보다 불편한 파리의 단점들을 꼬집는 말에 더 가깝게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내 생각에는 늘 효율성과 합리성을 우선으로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과 반대되는 단어이니, 오히려 더 여행과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뜻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커피 2잔 정도의 값이긴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파리를 여행할 땐 꼭 꽃을 사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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