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실업자가 될 결심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1년에 배출되는 박사학위 취득자의 수는 약 17,000명 정도.
이 중 대충 어림잡아 4% 정도가 해외기관에 발탁되어 연수를 떠난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4%의 오직 4% 정도 만이 '교수님'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남은 4%의 96%에 해당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나는 소위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학위과정 동안 늘 4%의 4%라는, 매우 소수의, 거의 실험적으로 예외에 가까운 현상을 마치 나의 정해진 결괏값이라 여겼다. 창피를 무릅쓰고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나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오류가 처음부터 전제되어 있던 잘못된 결괏값이었다. 세포들이 오류 없이 활기차게 분열되는 그 시절엔 누구나 그렇듯 각자의 인생에서만큼은 본인이 주인공이니까. 나 역시 여느 드라마나 애니메이션들처럼, 평범 이하의 능력치를 가졌지만 우연처럼 마주하는 인연들을 통해 '능력만랩캐'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을 하고, 해외에 나와서도 나에게 벌어지는 다방면의 문제들이, 다 내가 주인공임을 입증하는 근거자료라고만 여겼다.
그랬던 내가! 올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예의 그 4%의 4%는커녕, 4%의 96%에 조차 들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로 예정했다. 매년 이맘때쯤에 해오던 계약연장 서류에 스스로 서명하지 않겠다 선언한 것이다. 딱히 이직할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니거니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직업적 티켓을 따낸 것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모두가 나의 퇴사 소식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철저하게 팀보다 본인이 우선이었던 나의 보스조차 수차례 개인미팅 일정을 잡아 나의 결정을 컨펌했다. 물론 개인미팅이라고 했지만, 그냥 그녀 다운 보여주기식의 상담미팅이었다.
프린트와 큰 책상 하나 덜렁있는 회의실에서 그녀에게 취조하듯 받던 수차례의 미팅은 당연하게도 나의 퇴사 의지를 꺾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나의 경력단절과 체.류.문제를 들먹이며, 걱정인듯한 말로 협박을 했을 땐 아주 살짝, 정말 사알짝 나의 결정을 철회하는 건 어떨까 한 10분쯤 상상은 해봤다. 하지만 이내 대충 공들이지 않고, 둘둘 둘러 건넨 그녀의 걱정 안에는 사실 안정적인 위치를 지불하고 얻은 적당한 호구에게 느끼는 아쉬움뿐이라는 걸. 이제는 알만큼 알게 된 때탄 경력직(?)인 나는 딱 그 10분만큼만 나의 결정을 배신했다.
한국에 있는 몇몇의 가까운 주변인들도 쉽사리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내가 아직 말을 못 하고 있을 뿐인 새로운 도전이나 계획이 있다고 믿는 듯했다. 더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신뢰와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퇴사는.. 정말로 아무 계획이 없는 뻔뻔한 실행력만이 작용한 결과였다. 실제로 30대 중반의 나이와 늘어날 만큼 늘어난 가방 끈 밖에 없는 나는, 당장 계약이 끝난 내년 1월부터 숨만 쉬어도 나가는 월세, 대출금, 전기세 등을 어찌해야 할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대책이 없다. 친척들 말대로 요즘같이 투잡, 쓰리잡하고 경제공부에 미라클 모닝까지 하는 세대에서 나는 가방 끈만 긴 바보인 셈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상황이 되고 나니, 주변인이야 어떻든 정작 내 마음은 평온하다. 이건 분명, 하고 싶은대로 한 자의 평온함이었다. 늘 나를 쥐고 흔들던 현실적인 걱정들 조차도 나의 이 무책임하고 예의 없어 보이는, 한없이 작고 연약하기만 한 퇴사행복이 "현실, 너와 싸우겠다"고 하니, 전의조차 상실한 듯 했다.
"아! 아예 대책이 없으면, 걱정하는 것도 의미가 없구나!"
나는 이렇게 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어리석었지만 현실은 이겼다!
성공적인 연구인지, 아닌지는 연구계획서가 얼마나 탄탄하고 논리적인지로 판가름이 난다고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뒤늦은 나이에 '나'에 대한 탐색을 주제로 한 나의 '제2의 직업탐구 연구'는 이미 탈락이다. 딱히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시작이 되어버렸으니. 그러나 짧은 인생을 살아보니, 인생은 원래 그랬다. 될지 안될지는 결국 실험과정을 거쳐 결과를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늘 그래왔듯 시작한 건 끝을 보기로 한다.
현실이 나의 어리석음을 똑똑하게 만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