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롱디를 하게 되었나?!
나, 재계약 안 할까 생각 중이야.
유난히 시원했던 올해 여름. 열어뒀던 창문으로 바람이 휙 불었다. 둥글둥글한 눈으로 날 보는 남편의 표정은 별 동요 없이 평온했다.
"어떻게 생각해?"
"남편으로서? 아님 선배로서?"
같은 대학교 두 학번 위의 남편은, 이렇게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의례 누구로서의 대답이 듣고 싶은지 꼭 물어본다. 물론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나는, 늘 둘 다를 선택하지만.
"둘 다."
"남편으로서는 두말할 것 없이 찬성이지. 네가 얼마나 고민해 온 일인지 충분히 옆에서 봤고 아니까."
"선배로선 달라?"
"아무래도. 실력도 있고, 열심히 해온 것도 아니까. 좀 아깝지."
'아깝다'는 말이 목에 덜컥 걸리는 기분이었다. 분명 남편은 ENFP이건만, 5년을 ISTJ인 나와 합을 맞춰 살아서 그런지, 선배로서의 대답은 늘 저렇게 예리하다. 나 역시 내가 한 노력들의 결실을 내 손으로 망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아깝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었다.
"근데, 재계약..
하지 말라고 할 거 같아 선배로서도."
"왜? 아깝다며?"
"아깝긴 한데, 이제는 조금 더 큰 데로 가봤으면 해서. 프로젝트도 끝나가니까. 그리고.."
"그리고?"
"오빠도 자리를 좀 옮겨보고 싶어."
후드득. 드라마처럼 갑자기 소나기가 창밖으로 쏟아졌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사실 직업적인 성공이나, 안정적인 지위 같은 것들을 생각해 이 분야로 온 나와는 달리, 남편은 바이러스 연구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한국에 아직 코로나나 메르스가 오기도 전이었던, 우리의 그 푸릇푸릇한 대학교 시절부터 남편은 늘 해외 고위험 바이러스 연구실에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나에게 말해왔었다.
"모집공고가 났어?"
"아니, 아직.
너랑 상의되면 이력서라도 보내보려고."
"뭐, 오빠 꿈이었잖아. 이력서라도 보내봐. 모집공고도 안 났는데 연락이 오면, 인연이지."
"진짜? 위험하다고 싫다고 했었잖아.
진짜 넣어봐도 돼?"
진짜냐고 묻는 남편 목소리에 벌써 들뜸이 느껴졌다.
"진짜.
오빠, 우리 어차피 부자 되긴 글렀는데 하고 싶은 거라도 맘껏 하고 살자!"
말이 씨가 된 건지, 얼마 후 정말 인연처럼 모집공고도 안 냈던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내고 한 달 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이후의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 돼, 프랑스 답지 않게 단 몇 주 만에 오빠의 이직과 첫 출근날이 결정됐다. 처음에 재계약을 하니 안 하니 하며 먼저 말을 꺼냈던 나보다도 8개월이나 빠른 일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은 8개월을 500 km나 떨어져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롱디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