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친 2주간의 기억
We saw that
your husband had a tumor
in his brain.
으스스한 바람이 휙 분 월요일 아침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늦잠을 잤고, 아침밥을 거른 채 후다닥 옷만 챙겨 입고 출근길을 재촉했던 정말 평범한 날이었다.
멀리서 신호등 빨간불이 보였다. 늦잠으로 출근길을 재촉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덕분에 급하게 들고 나온 핸드폰 화면을 켤 수 있었다. 초보 장거리 부부가 된 이후로, 아침마다 남편이 전날 밤과 당일 아침 출근길에 남겨놓은 메시지를 확인하는 게 소소하게 행복한 내 루틴이 됐다.
그런데 텅 빈 핸드폰 화면.
'띠로 롱 또 띠또 띠로 롱'
직감적으로 불안감을 느껴 남편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남편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평소보다 3배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
"오빠, 괜찮아? 아직 집이야? 출근은?"
"나.. 출근 못@#. 몸이 아 @#$%"
"오빠? 괜찮아? 오빠?"
"어.."
"오빠, 병원 안 가도 돼? 괜찮아?"
"어.. 나 좀 잘래"
"오빠, 연구실엔 연락했어?"
"..."
"오빠?"
"어.."
"오빠 말을 해야 알지. 괜찮은 거야? 일단, 내가 출근해서 화상미팅으로 들어갈 테니까 접속해 알겠지?"
"어.."
평소와는 다르게 어눌한 발음에, 오빠답지 않은 단답형의 문장들이 낯설었다. 부랴부랴 출근길을 더 서둘렀다. 화상미팅 화면 속 남편이 보였다. 남편은 지난주 목요일,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서 mpox virus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환자 샘플들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백신들을 접종했었다. 남편은 아마도 그 백신 때문에 약간의 후유증을 겪는 것 같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증세가 심각해 보였다.
"나 졸린데.. 좀 자고 싶어"
"홈캠처럼 보고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자"
"괜찮대도.."
"아냐, 오빠 금요일도 쓰러졌었다며"
"잠깐 한 10초간이었어"
"얼른 자, 진짜 그냥 조용히 보고만 있을게"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백신은, 바이러스의 껍데기만 모아서 접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두나 홍역바이러스 백신 접종 시에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뇌 쪽으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들이 있다. 오빠가 맞은 백신도 같은 계열이었기 때문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렇게 화상채팅창을 켜둔 채 업무를 보고 있었던 거였다.
"@#$#($)#(@*"
"오빠?!"
남편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내 외마디 비명이 집안에 찢어지게 울려 퍼졌다. 화면 속에선, 좀 자겠다던 남편이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떤 것도, 정말 아무것도! 사랑하는 그에게 해줄 수가 없었다. 일단 침착해야 했다. 지금 남편을 구할 사람은 나 뿐일 테니까. 먼저 병원에서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녹화했다. 그리고 함께 있던 동생에게 응급번호로 전화를 걸어달라 외쳤다.
"하아, 하아"
"오빠?! 정신이 들어?"
45초간의 짧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을 가쁘게 내쉬긴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날 불렀다.
"나, 무슨 일 있었어? 우리 애기 왜 울고 있어?"
"오빠,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아니면 지금 구급차를 불러줄게"
"응? 왜? 아냐 오빠 괜찮아"
정상상태로 돌아온 남편은 45초간의 경련이 일어난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다급한 내 외침과 울음이 범벅이 된 오빠의 영상을 보내줬다.
"오빠, 당장 병원으로 가"
"내가.. 이랬어?"
"응. 오빠 이게 만일 백신 때문이면, 알레르기 반응이거나 부작용일 수 있어. 얼른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해"
남편은 영상을 보고,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당혹스러움도 묻어 나오는 듯했다. 병원을 재촉하는 나에게 남편은 우선 연구실로 가서 보스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1시간 즈음이 흐른 뒤 연락이 왔다.
"나 입원실이야"
남편은, 본인이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보스를 찾아갔고, 그는 남편 팔에 난 상처와 영상을 보자마자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바로 감염내과 동료 교수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락을 받은 감염내과 교수는 오빠가 바로 입원과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줬다고 했다. 오빠는 지금은 입원수속이 끝나서 피검사와 더불어 이것저것 검사를 진행 중인데, 자꾸 졸리고,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잘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장 당일기차표를 끊고 반차를 신청했다. 그리고 집에 잠시 들러 속옷한벌과 보조배터리만 챙긴 채, 남편이 있는 도시로 이동했다. 6시간의 이동시간과 두 번의 기차환승이 필요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시간이 흐르고 밤 11시 30분, 드디어 남편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