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친 2주간의 기억
남편이 보내준 주소에 도착했지만 불은 다 꺼져있었고, 문은 다 잠겨있었다. 한국의 분주한 대학병원과는 다른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의 병원은 칠흙같이 깜깜한 주변과 어우러져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아무리 프랑스어를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우선 응급실 입구를 찾아 이동했다. 어느 병원이든 응급실은 열려있을 테니까.
'빙고'
역시나 응급실에는 아픈 사람들과 보호자, 가디언, 의료진들까지, 사람들이 많이들 앉아 있었다. 다행히 내부도 분주하지 않고 조용했다. 나는 핸드폰 속 구글번역기를 켜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가디언에게 향했다.
'Je suis venue dans cet hôpital à la recherche de mon mari. Il est ici à l'hôpital, il s'appelle ***.'
나는 남편을 찾고 있으며, 그가 이 병원에 있다는 원초적인 문장이었다. 할아버지 가디언은 말도 통하지 않는 작은 동양여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행정직원에게 데리고 가서 대신 상황을 설명해 줬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었는지, 혼자 웃으며 핸드폰을 보던 행정직원도 내 얘기를 듣자마자, 애처로운 표정과 함께 빠르게 오빠의 병실 위치와 가는 법을 종이에 적어줬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나는 바로 남편에게로 향했다.
생각보다 크고 복잡했던 통로들을 지나자 직원이 알려줬던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층수를 누르는 손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6층의 감염내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꽉 닫힌 감염내과 병동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캄캄한 복도가 길게 펼쳐졌다. 밤눈이 어두운 나는 도무지 오빠가 어느 병실에 있는지 이래 가지고는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간호스테이션으로 가 유리를 두드렸다.
"저..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요.
혹시 영어 하실 수 있는 분이 있을까요?"
한밤중에 도착한 낯선 동양인을 보는 간호사들은 혼란스럽고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나는 얼른, 행정직원이 적어준 종이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영어가 가능했던 젊은 간호사 한 명이 있어, 그녀가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나 남편을 좀 볼 수 있을까?"
"음..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
젊은 간호사의 호출로, 책임 간호사분이 오셔서 남편은 현재 격리병실에 입원해 있기 때문에 담당의사의 허락 없이는 절대 만날 수 없으며, 시간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지금은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해 줬다. 내일 오전이 지나고 나서야 남편을 만날 수가 있다고도 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젊은 간호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나 대신 열심히 내가 다른 도시에서 왔고, 나의 상황이 어떠한지 설명했지만 규칙은 규칙이었다. 일단 내일 점심때쯤 오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저기 마담!"
씁쓸한 마음에 고개를 떨구고 나가려던 차에 아까 그 젊은 간호사가 불렀다.
"남편에게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 나는 들어갈 수 있으니까 살짝 전해줄게"
"정말? 고마워ㅠㅠㅠ"
"그가 잠깐씩 잠들 때마다 널 찾는 것 같았어. 혹시 니 이름이 **야?"
"맞아!"
"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꼭 전해줄게!"
그녀는 내가 전해준 보조배터리를 주머니에 쏙 넣고는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아까보다는 목소리가 한결 안정되어 있었다. 나는 오빠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 내일 의사허락이 떨어져야 만날 수가 있대."
"엥? 난 감염자가 아니라 백신 때문인데?"
"응 알아. 근데 감염내과병동 규칙이래"
"아 그래? 근데 왜 격리실에 두지?"
"글쎄. 감염여부 확인 때문인가?"
"일단 보조배터리덕에 핸드폰이 살아나서 통화라도 되니까 살 것 같아.
내일 담당의 오면 허락받아 둘께. 내 와이프라고."
"알았어, 알았어"
이미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내가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 통화를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프랑스에서 생긴 하나의 해프닝이며, 내일이면 다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했다.
"애기야, 병실에 와도 된대!"
다음날 화요일 아침 10시쯤, 남편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병원도 보조배터리도 밤새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얼른 가겠노라 말하고 바로 출발했다. 사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알게 모르게 불안한 마음과 오빠가 이곳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것을 허락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한 시간도 자지 않고 눈물만 펑펑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출발할 수가 있었다.
"아! 네가 **의 와이프니?"
"응! 맞아 내가 **의 와이프야"
"음.. 그를 보기 전에, 잠깐 나랑 얘기 좀 할까?"
6층 감염내과병동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지긋한 여교수가 아는 척을 했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혹시.. 같은 전공이니?"
"응, 편하게 말해도 돼"
"오!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영어가 서투르거든."
영어가 서투르다며 웃는 표정의 담당교수는 꽤 따뜻한 사람 같아 보여 한결 마음이 놓였다. 가뜩이나 오빠 혼자 입원해 있는데, 이왕이면 친절하고 따뜻한 의사가 나으니까.
"괜찮아. 그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거니?"
"음.. 너도 알다시피 백신은 바이러스의 껍질뿐이고, 그래서 감염을 일으킬 수가 없어."
"동의해. 그치만 일부 수두백신의 부작용은 뇌에 영향을 미치잖아"
"오, 그래 맞아. 그리고 그의 상처는 백신 때문이 맞기도 하고. 하지만.. "
"?"
"놀라지 말고 들어. 어제 우린 MRI 촬영과 심전도, 혈압, 혈액검사를 했어"
"응, 그런데?"
"전부 다 정상이야.. 근데.. 그의 머릿속에서 종양을 발견했어."
"뭐..? 뭐라고?"
"일단, 침착해. 우린 아직 이 종양이 뭔지 몰라. 그리고 아주아주 작아. 하지만 조직검사가 필요해. 이곳에서 받을지, 한국에서 받을지 물어보고 싶어서 보자고 했어. 너의 동의 싸인이 필요한 일이거든"
갑자기 시야가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지난 주말에 봤던 그레이아나토미 때문에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혹시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은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할 말을 잃고 서 있는 나를 본 그녀는 손을 잡고 일단 천천히 생각해 보고 얘기해줘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종양과 관련해 뇌파검사와 몇 가지 다른 검사들을 할 것이라는 사실도.
"나.. 남편이 보고 싶어서 그런데.. 우선 좀 만나고 싶어. 그러고 나서 이 문제를 그와 상의해도 될까?"
"물론이지. 근데 너 괜찮니?"
내 얼굴이 얼마나 하얗게 질려있는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응.. 괜찮아. 나 진짜 일단 남편을 만나고 싶어"
"그래. 들어가 봐"
2중 음압실로 된 1인실 안쪽에 남편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오빠.. "
"아고, 애기 왜 울어? 오빠 괜찮아.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봐. 놀랬지?"
"오빠 뇌종양이래..
조직검사를 해보고 싶은데 여기서 할지, 한국에서 할지 결정해야 한대.
근데 나는.. 오빠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내면서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오히려 남편이 더 침착하고 덤덤한 모습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남편의 그런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반했었다. 아파도 나의 오빠는 나의 오빠였다.
"한국으로 갈게."
"병원 예약해 둘게. 메이저 병원, 메이저 교수님들한테 예약 바로 할게"
"응. 부탁 좀 할게. 걱정 마 별일 아냐."
그의 단단하고 빠른 판단으로 생각보다 우리는 금세 결정을 할 수 있었고, 담당의사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병원에서 이후 일정을 진행하고 싶어 해."
"오, 그래. 근데.. 그가 이미 경기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모르겠어."
"뭐라고? 작은 암이라고 했잖아."
"응. 그렇지. 하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우선 검사결과들을 가지고 신경외과 의사들과 상의 후 알려줄게"
"응 고마워."
"그가 비행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의료장비가 필요할 수도 있어"
"뭐라고?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니?"
"아니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야. 우선 신경외과 의사들과 협진 후 알려줄게"
그녀에게 결정을 전달 한 뒤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를 걸어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간호사이신 엄마는 침착하게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니, 아직 확진하긴 이르다고 날 다독였고, 한국에 있는 아빠와 막냇동생, 오빠의 사촌누나 분께서는 가장 빠른 날짜로 메이저병원에 예약을 완료해 줬다. 병원예약에 필요한 정보와 취소되는 예약일은 없는지 등을 3명이 동시에 알아보고 처리하다 보니 혼이 쏙 빠져나가는 듯했다.
프랑스 병원은 저녁 8시에는 무조건 모든 보호자가 병원을 떠나게 되어있다. 환자의 회복을 위해서 보호자와의 격리가 필수 라고 했다. 3주 만에 만난 남편을 고작 9시간 정도 보고 두고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중 3시간은 병원예약이니 귀국 비행기니 알아보는데 썼고, 2시간 정도는 오빠 직장과 내 직장에 상황설명을 하고 휴가신청 및 병가신청에 필요한 행정처리에 써야 했기 때문에 정작 오빠와는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한 기분이라 더 그랬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니 오빠 흔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후, 이제야 몰려오는 현실과 슬픔이 감당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오빠의 2일 차 밤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