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life
서로 바뀐 환경을 정돈하고, 아픈 몸을 추스르느라 후루룩 흘러버린 것과는 다르게 두 번째 주는 슬슬 떨어져서 지낸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주였다. 다른 무엇보다 퇴근을 해도, 밤이 돼도 남편이 집에 안 온다는 사실을 매일 저녁마다 새롭게 깨닫게 되는 묘한 기분이었다. 인지하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의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것 같달까?
장거리 부부가 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니, 드디어 장거리 연애(?)의 장, 단점도 하나 둘 느끼기 시작했다.
장점 1. 일의 집중도는 매우 높아진다.
장점 2. 갓생 실천도가 증가된다.
장점 3. 서로에 대한 감사함이 증가된다.
장거리 부부의 장점들은 대체로 일(work)적인 부분에서 나타났다.
퇴근을 해도 놀 사람이 없거니와, 시간이 비면 오히려 허전함이 커지니 점점 몸을 바쁘게 놀리게 되더라. 운동을 싫어하는 아내와 맨날 집에서 노느라 늘 운동을 갈망만 하던(?) 남편은, 나와 떨어져서 지내게 되면서 드디어 아침, 저녁으로 30분씩 런닝을 시작했다. 나도 퇴근 후까지 일과 관련된 활동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서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면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주엔 논문 리뷰어 활동(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을 미리 읽고 평가하는 학술논문평가자 활동)이며, 인턴들 교육까지 도맡았다. 바쁘면 시간도 잘 가니까.
이 와중에 그나마 삶(life)적인 부분의 장점을 하나 꼽아보라면? 아마도 감사함.
문득문득 혼자 장을 봐오고, 1.5L 생수 6개짜리 묶음을 3일에 한번 꼴로 사 오고, 깜깜한 밤에 혼자 불을 끄고 누우려고 하면 그동안 남편이 해줬던 배려에 대해 이전보다 더 깊은, 저어-기 마음속 어느 컴컴한 던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매일 샌드위치로 식사를 하는 남편도 마찬가지.
"에피가 만들어준 떡볶이 먹고 싶다"
"오면 해줄게."
"된장국이랑 연근조림이랑 두부부침도"
"알았어 알았어.
근데.. 대신 나 물이랑 쌀 좀.. 잔뜩 사놔 줄래?ㅎㅎ"
와 같이.
반대로 단점은 삶(life)적인 부분에 치명적인 것들이 많다.
단점 1. 삶의 불안정성이 증가된다.
단점 2. 화상미팅은 충분한 대체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떨어져서 지내는 동안 화상 미팅창을 켜두고 생활화하자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마음은, 의외로 툭툭 끊기는 깨톡 음성통화와 하필 이상한 표정일 때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 화상통화를 붙잡고 몇 번을 끊었다 걸었다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스믈스믈 올라오는 짜증과 함께 더 발전하지 못하는 과학에 대한 한탄과 서운함으로 변질된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할 때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순간순간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상의하던 때랑은 다르게 혼자 무언가를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퇴근 후까지 졸졸 쫓아와 번아웃으로 인한 무기력함과 불안한 마음들을 만들어 낸다.
'그건 잘 처리되겠지?' 나 '아.. 괜히 맡기고 왔나? 내가 할걸.' 등과 같은 말꼬리들을 멈춰줄 사람이 없다는 건 꽤나 삶의 질에 치명적.
사실 장단점을 안다 해도 장거리연애는 아마 대부분 피지 못할 상황에서 선택하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겠지.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고, 2주 차 체험후기를 말해보라면? [ 장거리 연애는 생각 보다 더! 쉽지 않다. ]
물론 출근길과 퇴근길에 하는 통화나, 서로의 안부를 챙겨 묻고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보면 결혼 전으로 돌아간 기분은 들지만, 음.. 그리고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와도 우린 이 선택지를 고르겠지만(!) 요즘같이 워라벨(work와 life의 벨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시대에 확실히 장거리부부는 WORK(!!!) & life 같은 선택지.
결국 남은 30주 동안 WORK!!!! & life로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