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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eltina Nov 17. 2023

첫 번째 주; 생강청은 누굴 위해 끓였나

남편과 나는 프랑스에 온 후 지금까지 24시간을 함께였다. 은유적이거나 비유적인 24시간이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 24시간 말이다. 같은 집에서 일어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같은 오피스에 출근해, 함께 논문을 쓰고 실험을 하다가, 같이 퇴근해,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이 게임을 하다, 같이 잠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둘도 없는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의지되는 동료였다.


프랑스의 겨울은 '멜랑꼴리'하다.

펑펑 내리는 새하얀 눈에 달콤한 붕어빵, 폭신폭신한 파카와 부들부들 수면양말이 생각나는 한국의 겨울과는 다르다. 겨울이 시작되면 일주일 내내 햇빛은 구경도 못할 때가 더 많고, 추적추적 거리며 내리는 비만 내내 계속된다. 그런 상황에서 보일러는 없고, 라디에이터는 비싸서 펑펑 틀지도 못하니, 매서운 칼바람은 없다지만 오소소 한 한기가 뼛속까지 스민다. 이런 축축한 분위기는 누구든 몸을 움츠려지게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리 유쾌한 성향의 사람도 금세 마음까지 우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그렇게 겨울만 되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곤 했다. 그런데! 하필 그런 시기에 떨어지다니! 짐을 싸기도 전부터 마음이 시려 부르르 떨었다.


"오빠, 생강청 끓여주면 추울 때 마시기 좋을 거 같은데 어때?"

"글쎄.."

"퇴근해서 싹 샤워하고, 커피대신 따뜻하게 한잔 마시면서 영상통화하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별로야?"

"아- 그럼 가져갈래"


역시, 뭐든 하면 는다고, 극단적 T성향의 나도 이제 F타입의 남편을 어떻게 구슬리면 되는지 알 것 같다. 한참을 인터넷 속 레시피들을 찾고 찾아 생강을 갈아 즙을 내 끓이는 방법의 레시피를 찾았다. 맵기도 덜 하고 과육도 없어서 후루룩 마시기에 좋을 것 같았다. 과육이 있으면 설거지도 귀찮고, 먹는데도 성가셔서 분명 한두 번 먹고 말 남편이기 때문에 손이 가더라도 그렇게 만들어 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린, 2시간을 서서 졸이고 졸여 만든 생강청을 나눠 들고 서로 멀리 떨어져서 보내는 첫 주를 맞이했다.  



일요일 오전, 바리바리 싼 짐과 함께 남편을 보내고 나자마자, 빈자리를 그리워하기도 전에 칼칼한 목과 푹푹 쑤시는 근육통이 먼저 찾아왔다. 짧은 시간 내에,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남편이 하던 업무들을 전부 인수인계받느다고 한껏 바쁘고 정신없던 몸이 풀어져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그날 밤부터 39도가 넘는 열감기로 꼬박 3일을 앓아누었다. 예전에 마음이 아플 때와 몸이 아플 때, 뇌의 같은 부분이 자극된다는 논문을 읽었던 적이 있다. 나는 열이 올라 벌벌 떨면서도, 이 통증이 남편과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된 게 슬퍼서 아픈 건지, 아님 진짜 감기가 이렇게 독한 건지 고민스러웠다. 해열제를 교차복용을 해도 열은 떨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삼키질 못해 이렇게 남의 나라에서 남편도 없이 객사를 하는 건 아닌가 싶던 그때, 끓여뒀던 생강차 생각이 났다. 보글보글 포트로 따뜻한 물을 끓여 생강청을 크게 한 숟갈 탔다. 열 때문에 오들오들 떨던 몸이 금세 훅 하고 데워지는 게 느껴졌다. 2시간을 서서 졸인 사랑의 효과가 실감이 났다.


"오빠!"

떨어지자마자 앓아누워있느라 3일 만의 통화였다.

"이제 좀 괜찮아? 열은? 뭐 좀 먹었어?"

핸드폰 속 남편 얼굴은 멀리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충분히 느껴지는 상태였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첫 출근은 어땠는지, 여긴 어떤지 재잘대다 보니 1시간이 금방이었다.


"오빠, 생강청 진짜 효과 있더라"

"다행이다. 갈고, 짜고, 끓이고, 졸이고 그렇게 정성 들였는데. 효과가 없기도 힘들지."


남편말이 맞았다.

결혼 전, 박사과정 학생일 때 나는 늘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다. 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내 스스로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느껴진 탓이었다. 주눅 든 마음에 늘 조용히 혼자 집을 나서려고 했지만, 꼭두새벽인 시간에도 엄마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줬었다. 병원 직원식당에서 아침이 나온다고 하는데도 엄마는 엄마밥이랑 같냐며 박사를 졸업할 때까지 3년을 꼬박 그랬다. 가뜩이나 마음도 쭈굴 한데, 잘 먹고 내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간 엄마밥으로 아침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혼자 타지로 가는 남편을 생각해 정성 가득 끓인 생강차가 다른 약만 할까 싶었다. 물론 그 정성의 효과는 내가 봤지만ㅎㅎ.

누구를 위한 마음이든 어떠랴 사랑 가득 끓인 생강차는 누구에게나 약인 것을!

그렇게 우리의 첫 주가 생강차의 효능검증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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