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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30. 2024

봄이니 안 하던 짓을 해볼까요

불쑥, 어리광 

  봄에는 걷다 보면 자연스레 꽃들의 안내를 받게 된다. 동백은 길 위에 붉고 강렬한 한 때를 뚝뚝 떨구어 놓는다. 주변을 빈틈없이 온통 붉게 만들어 놓겠다는 아름다운 의지. 흩트러진 꽃잎 한 장 한 장에 감탄한다. 누렇게 변색된 목련 꽃잎은 앞서 걸어간 힘겨운 이의 발자국. 흰 접시가 산산조각 난 것처럼 잘게 부서진 흰 꽃잎도 있다. 피어나는 찬란함은 눈길을 사로잡지만, 떨어진 꽃들 역시 발길을 자꾸만 멈추게 한다. 그것에 마음이 쓰인다. 


  도서관 가는 길인데도  꽃구경을 나선 마냥 이 꽃도 저 꽃 자꾸 사진을 찍는다.  오랜 시간, 유독 봄엔 혼자였다. 혼자임이 봄엔 더 도드라진다. 설렘과 쓸쓸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봄에 깊이 실감했다.  

  '엄마 보여 줘야지. 엄마는 이 꽃 이름을 알까.' 꽃을 보면 종일 방에 누워 있을 엄마가 불쑥 생각났고 엄마가 떠오르기만 해도 혼자는 아닌 기분이 들었다.   


   봄이라 그럴까. 안 하던 짓을 불쑥한다. 


    “엄마. 안아줘.” 

    “손이 아파서 못 안아.”

    “살짝이라도 안아줘.” 


  아빠는 내 어리광이 웃기는지 소리 내 웃는다. 괜히 자신이 더 멋쩍어하며 내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엄마는 염증과 통증으로 불편한 오른손 검지를 최대한 내 등에 닿지 않게 멀리 둔 채 엉성하게 안아준다. 포근한 엄마 품은 느낄 수 없지만, 엄마와 나 사이의 닿지 않는 공간을 느낀다. 마치 돌담의 돌과 돌 사이 바람구멍 같다. 엄마가 등을 툭툭 두드려준다. 내가 엄마를 꼭 안는다. 


  봄이라 그럴까. 안 하던 짓을 불쑥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엄마가 주인공에게 “딱 한 번만 더 내 딸로 태어나 줘.”라고 말하자 딸이 “알았어. 엄마 딸로 태어날게.” 하며 서로 포옹하며 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분위기를 잡고 연기에 들어간다.   

  “나는 엄마 딸로 다시는 안 태어날 거야. 나는 운전도 못 하고, 돈도 못 벌고, 결혼도 못 했으니까.” 

  자폭. 우스개 소리로 시작했다가 예상 못한 눈물이 터져버렸다. 적잖이 당황한 엄마는 달래듯 말한다. 


  “아니야. 내 딸로 태어나줘.” 

  “싫어. 안 태어날 거야. 운전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결혼도 잘하는 딸 태어나라 해.”


  이 심술궂은 말투며 쪼잔한 태도는 뭐지. 참 못난 진심. 그런데 막상 울고 말하고 나니 마음 구석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슬픈 느낌은 뭐지. 


  봄이라 그럴까. 안 하던 짓을 불쑥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점심때가 지나있었다. "점심 안 먹으면 연락을 해야지." 짜증스러운 엄마의 목소리를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너무너무 너무나 다정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머위 담글라고. 올 때 식초와 간장 좀 사 갖고 오라고."  

  "어... 두 시까지 가면 돼?"

  다급해져서 물으니 엄마가 느긋하게 말한다. 

  "아니... 천천히 와도 돼. 보고 와.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최상급 다정하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마음이 스르륵 녹아버려서 눈물이 다 뻔했다. 엄마 목소리는 아픈 후로는 한숨이면서 통증. 대부분의 날은 자포자기였다. 오늘의 목소리는 노랑 개나리 같았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오늘 엄마 목소리 덕분에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고 하니 엄마가 별스럽다는 듯 웃는다. 일기에도 적어두었다. 시쿰하고 아삭한 머위장아찌 냄새가 종일 났다.  


  봄이라 그럴까. 안 하던 짓을 불쑥한다.


  큰 이모는 인공관절 수술 한 다리를 끌고 자꾸 밖에 나가서 봄나물을 뜯어와 우리 집에 나눠준다. 쑥, 또 쑥, 머위, 이름 모를 쓴 나물, 원추리(?) 어제는 텃밭에 있는 취나물까지 쌈 싸 먹으라고 주었다. 어제는 취나물 쌈을 먹고, 오늘 아침에는 간장 식초 들기름 참깨 넣고 샐러드 하고 남은 것은 된장에 슬슬 무쳤다. 이모 덕분에 봄나물을 실컷 먹었다.   

  

  봄이라 그럴까. 불쑥 엄마와 내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엄마가 큰 이모에게 하는 말이 꼭 내가 하는 말 같고, 동생에게 하는 말도 그렇다. 엄마와 서서히 한 몸이 되어가는 묘한 느낌. 엄마가 딸에게 하는 잔소리를 내가 엄마에게 하고 있다. 


  봄이라 그럴까. 안 하던 짓을 자꾸만 하고 싶다. 사랑을 듬뿍듬뿍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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