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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Apr 08. 2024

당신도 질투에 사로잡히나요

오묘한 질투의 맛

  나를 괴롭히는 독보적인 감정은 질투다.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없는데 너에게는 있다. 나는 못하는데 너는 한다. 너는 되는데 나는 안 된다. 한 마디로 나와 너를 비교하면서 자신이 쭈굴쭈굴하다 생각될 때 질투가 생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질투를 느끼며 살지 않을까. 질투를 아예 느끼지 않으며 사는 사람도 있을까.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몹시 질투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질투가 나는지는 사람마다 개별적인 차이가 있겠다. 나의 경우, 어떤 공통점이 발견된다. 주로 내가 변변치 못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질투심은 생겨난다. 못난 나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 때, 잘 나가는 듯한 누군가를 보면 내가 더욱 몹쓸 못난, 쭈굴탱이처럼 생각된다. (중학교 때, 쭈굴탱이는 욕 중 높은 등급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보니 귀여운 어감이 느껴져 사용한다.)


  질투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질투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조금 더 면밀히 질투를 살펴보자.  

      

  나는 멈춰있다고 느끼는데 너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면 질투가 난다.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너는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모습일 때 나는 자책과 열등감에 빠진다. 자책과 열등감이 질투로 인도된다. 


  질투는 변화를 꿈꾼다.


  '변화' 없음. 졸졸졸 흐르지 못하는 고인 물 상태가 질투를 유발한다. 스스로 자라고 있다고 체감하지 못할 때 질투의 싹이 돋아난다. 질투가 계속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어떤 맛이 날까. 질투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질투가 없을 때는 비교적 심신이 평온하다. 자신이 좋은 사람 같다. 하지만, 질투가 생겨나면 몸과 마음이 괴롭다. 부글부글 들끓고 앓아눕기도 한다. 질투에 사로잡힌다. 문제는 타인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서서 나와 상대를 싫어하는 감정에 까지 이른다. 그래서 위험하다. 나와 그를 미워하는데 에너지가 집중된다. 내가 나로 수용되지 않고 그처럼 되어야 평안에 이를 것 같은 망상. 질투를 멈추고자 장면 전환을 시도해 보지만 잘 되지 않고, 다시 질투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굴레에 빠져든다. 


  질투는 평안에 이르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  


   어쩌면 나의 내면에서 가장 부정하고 싶은 감정이 질투일지 모르겠다. 그럴수록 더욱 강화되고 그것에만 자꾸 꽂혀버리는 고정 채널이 된다. 질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는지 모르겠다. 다만, 질투라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기지 않고 직면하고 싶어서 글을 좀 더 진행해 본다. 


  질투가 힘든 건, 한 번 사로잡히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감정이다. 잊으려 애쓸수록 구덩이를 깊이깊이 파면서 동시에 매몰된다. 질투를 구덩이가 아닌 우물이라 가정하고 깊고 어두운 바닥에서 빛 쪽으로 조금 길어 올려 보자.  

  

  질투도 빛난다. 


  질투를 통해서 숨은 욕망을 알 수 있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싶구나. 내가 예쁜 옷을 입고 싶구나. 내가 해맑은 얼굴을 갖고 싶구나. 내가 주목받고 싶구나. 질투가 올라오면 감정을 수용하고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질투가 나는 대상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잠시 두는 것도 필요하다. 내 상황을 직시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타인과 비교하는 공간은 비좁아질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히읗과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난 뒤 소감을 물었다. 당연히 재미있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질투 나요."

  히읗은 얼굴이 붉어진 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도 저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데, 못 만드니까 질투가 난다고 했다. 나는 재미있게 즐기며 볼 수 있는 영화가 그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히읗은 유튜브에서 유아용 영상을 만들고 있다. 영상에 나오는 캐릭터도 귀엽고 그만의 유머코드도 녹아 있다. 제법 조회수도 나오고, 인지도도 점점 올라가는 중이다. 히읗은 만족하며 일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보면, 질투를 느끼는지 궁금하다.       

 

  질투는 억압된 욕망을 드러내주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을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질투에게도 밝은 면이 있다. 질투를 통해, 질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들어준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고 투명해진다. 질투라는 열매의 맛은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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