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다
함께 허물없이 매미허물 보러 다니고 싶은 그림책
피어나다 / 장현정/ 길벗어린이
장현정
첫 책을 만들고, 허물을 수집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그 시간, 그 자리의 향기를 담았습니다.
<피어나다>는 저의 세 번째 그림책입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맴>과 <그래봤자 개구리>가 있습니다.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미가 벗어 놓은 옷, 텅 빈 공간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보았습니다.
그 흔적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피어나 보려고 합니다.
"큰 매미가 저기 붙었네."
어디? 어디?
아빠와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대추나무 뒤, 담벼락에 정말 큰 매미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힘없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매미 들어갈 때 됐나 보다."
"벌써?"
"됐지."
"불쌍해. 너무 짧게 살아."
내 방에는 매미 허물 한 개가 잘 보관되어 있다. 보고 있으면,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한 조각품을 보는 마냥 빨려 들어간다. 고민도 걱정도 허물 등껍질 벌어진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다리를 오므리니 등껍질 틈이 좀 더 벌어진다. 어쩌면 매미도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세상 밖으로 나왔겠구나. 상상해 본다.
오늘도 도서관 가는 길에 열 개 정도의 매미 허물을 보았고, 바닥에 떨어져 죽은 매미도 보았다.
돌, 나뭇가지, 나무껍질 이런 것들에 정신 팔려 지내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이번엔 매미 허물에 빠져버렸다. 이유는 역시 모른다. 흙투성이인 채로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 허물을 보는데 귀여웠다. 나뭇가지에 두 발을 꼭 맞대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매미 허물이 사랑스러웠다. 몸통이 커다란 느티나무에 일렬로 쪼로록 줄지어 탈피한 매미가 기특했다. 한낮 무더위에 매미 허물은 잠시나마 나에게 땀범벅으로 꼬질꼬질해진 나를 잊게 해 준다.
"매미는 탈피 장소로 매끈한 나무껍질을 가진 나무보다 벚나무, 느티나무... 같이 오돌토돌한 수피를 더 선호하나? 그런 것만도 아니다. 팔랑이는 깻잎에 붙어있는 매미 허물도 보았다. 매미 허물의 발 갈고리는 성능이 무척 뛰어나다. 내 손가락에도 잘 붙는다.
"매미가 나오는 그림책 뭐가 있나?"
"언니 '피어나다'라는 그림책 좋아요."
그림책 끼고 사는 허나뭇잎의 추천은 아주 훌륭했다.
표지부터,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그림책. 초롱하고 영롱한 눈망울의 매미. 마치 허물 방석을 깔고 세상을 구경하는 듯하다. 연둣빛 매미의 얄랑이는 날개가 갓 돋아난 이파리처럼 보인다. 매미가 '피어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기껏해야 꽃, 구름, 연기 (조금 고민해서) 얼굴 정도 '피어난다'의 주어로 생각하며 살았다. 장현정 작가의 그림책 표지를 보니 매미가 정말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다.
수채화로 그려진 보랏빛 맥문동, 다양한 생김의 나뭇잎, 꽃과 초록 풀들이 어우러져 여름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장 한 장 그려 낸 전부를 무척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면들.
올여름 '피어나다' 그림책을 만나서 몹시 행복하다. 이제는 매미 허물이 매미 집 같기도 하고, 매미 외투 같기도 하고 매미 신발 같기도 하고, 매미 놀이터 같기도 하고, 씨앗 같기도 하고, 땅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 친구 같기도 하다. 심지어 나 같기도 하다.
작가님, 더할 나위 없이 이토록 귀여운 매미 책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님은 피어나셨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도. 저도 작가님 따라 피어나 보고 싶습니다.
매미가 붙든 깻잎이 찢겨 나가 있다.
이 허물의 주인은 너인가?
표지 이미지 출처 : 피어나다 - 예스24 (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