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
긴장감 넘치는 무대가 펼쳐지는 그림책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 /
아드리앵 파를랑주 글. 그림/ 박선주 옮김/ 정글짐북스
도서관에 갔다가 이 그림책이 보이면 꼭 빼서 다시 읽곤 했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다시 읽을 때마다 팽팽하게 몰입했다. 그림책의 매력이 줄어들지 않았다. 수수께끼 같은 그림책.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으로 보았던 건 아니다.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게 그저 좋았다.
이번에는 무슨 마음인지 작정을 하고, 수수께끼를 푸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림책 속 장면은 자연스럽게 연극 무대로 옮아갔고, 나는 독자이면서 관객, 인물과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림책을 희곡의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었다.
무대 : 사자의 방
무대 위의 침대, 커튼, 전등, 거울, 양탄자는 실제 사물이 아니라 선으로 구획한다.
등장인물 : 호기심 소년, 생쥐, 거미, 흰 구두 소년, 소녀, 사자, 날벌레, 개, 새 8마리
(면지) 붉은 조명이 켜지고, 무대를 비춘다.
잠시 정적.
발끝으로 살살 조심스럽게 걷는 소년이 무대에 등장한다.
잠을 자던 생쥐가 소년이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달아난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호기심 소년은 재빨리 침대 아래로 숨는다.
호기심 소년 : (떨리는 목소리로) 사.. 사... 자야.
무대 위쪽에서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치고 있다.
흰 구두를 신은 소년이 무대로 등장한다.
호기심 소년은 몹시 두려워하며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가린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흰 구두를 신은 소년은 재빨리 천장의 등으로 올라간다.
흰 구두 소년 : (마음속으로) 너무 무서워.
거미는 거미줄을 아래쪽 방향으로 쳐나간다.
무대에 등장하는 소녀.
호기심 소년은 책상다리에 바짝 몸을 붙이고 소녀의 소리와 움직임을 의식한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소녀 :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사자일 거야.
소녀는 양탄자 아래 숨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날벌레 한 마리가 전등 쪽으로 날아간다.
무대에 등장하는 개.
개는 방을 한 바퀴 돈다.
(문밖에서 나는 소리)
개는 사자인 줄 알고 겁이 더럭 나서 부리나케 거울 뒤로 숨는다.
호기심 소년은 양탄자 아래 숨은 소녀의 방향 쪽으로 몸을 돌린다.
소녀는 양탄자의 낡은 부분을 주시한다.
흰 구두 소년은 날벌레가 자신 가까이로 날아오자 구두 한쪽을 벗는다.
한 무리의 새가 방으로 들어온다.
낡은 양탄자에 구멍을 내 손가락을 넣어보는 소녀.
그걸 바라보는 호기심 소년.
(문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새들은 커튼 뒤로 숨는다.
호기심 소년과 소녀는 서로에게 교신하듯 양탄자 구멍으로 검지를 서로 맞댄다.
흰 구두 소년은 구두를 들고 날벌레를 쫓는데 집중한다.
사자가 늠름한 자태로 무대에 등장한다.
호기심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구멍 사이로 바라본다.
새 한 마리가 개의 다리 쪽에 있다.
사자는 방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는다.
새, 소녀, 개, 소년들, 소녀까지 모두 두려움에 떤다.
사자 : (방을 둘러보며) 내 방인데 낯설어.
(이상하다는 듯) 거울 위치가 달라졌어. 천장 등도 흔들려.
(발로 향하는 시선) 양탄자는 살짝 떨리고...
덜컥 겁이난 사자는 커다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는다.
벌벌 떠는 사자.
호기심 소년은 새의 깃털 하나를 줍는다.
무대로 등장하는 생쥐.
거울 뒤에 있던 새는 날아오는 날벌레를 향해 입을 벌린다.
방 안을 휘 둘러보는 생쥐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다.
사자는 눈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생쥐 : (속으로) 나만 있나 봐.
(이불에 몸을 비비며) 푹신해. 불빛도 은은해.
편안하게 누워 스르륵 잠이 드는 생쥐.
호기심 소년은 새의 깃털을 양탄자 구멍으로 내민다.
개의 코 위에 올라 선 새. 새의 입에는 벌레가 물려 있다.
거미는 사자의 등 위에 있다.
암전
모두 눈을 뜨고 있지만, 생쥐만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들어있다.
사자가 이 방에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두려움을 일으킨다. 애초에 사자의 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두려움에 떨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소년의 경우 호기심을 갖고 사자의 방에 들어온다. 호기심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두려움이 되었다가 양탄자 아래 소녀를 만나며 다시 호기심으로 바뀐다. 소년 소녀는 두렵지만, 타자의 기척에 호기심이 생긴다. 타자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타자와 함께 있다는 감각은 두려움을 잊게도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은 않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한다. 벌레가 나타나자 흰 구두 소년은 신발을 벗어 벌레를 쫓고, 새는 먹이 사냥에 나서며, 거미는 거미줄을 아래로 부지런히 쳐나간다.
작가는 단순한 선과 곡선으로 사자의 방을 상상하게 한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로 사자를 상상하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독자는 관객의 입장이 되어 무대 위 인물들을 지켜본다.
독자에게는 보인다. 누가 들어오는지. 독자는 관객(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지켜본다. 바라보기. 그 자체 만으로도 두려움과 거리를 둘 수 있다.
도망갔던 생쥐가 다시 돌아온다. 사자의 방에 아무도 없다고 여긴 생쥐는 편안하게 잠이 든다. 잠든 생쥐를 보고 있는 독자는 생쥐처럼 속이 편할 수 없다. 혹시 사자가 이불을 확 걷고 일어나면 어떡해.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내므로.
무대로 상정하고 읽으니 그림책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림책을 앞에서부터 촤르륵 넘겨보니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하다. 혹시 작가도 이런 방식으로 읽어낼 것을 예상하며 그림책 작업을 했을까.
읽을 때마다 무언지 모를 독특한 느낌에 매료되었다. 세상에 이런 그림책도 있구나. 작가가 대단한 천재라고 생각되었다. 막연한 느낌이었다. 왜, 뭐가 좋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이 그림책을 어떻게 느낄지도 궁금하다. 4살 조카에게 읽어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으며, 계속 두렵지는 않음을 이 그림책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려운 와중에도 우정이 피어나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벌레를 잡으러 이동을 할 수도 있다.
정말 사자가 들어왔을 때 (25p) 모두는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소년, 소녀, 개는 또렷하게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두려움의 정체를 확인하겠다는 듯이. 마지막에는 사자만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소년은 소녀에게 깃털을 내밀고, 개는 자신의 코 위에 앉아 벌레를 잡은 새를 올려다보고 있다. 전등에 숨은 흰 구두 소년의 구두 한 짝이 없다. 어디 갔을까.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두려움이 고정된 것이 아니며 변화무쌍해지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두려움은 실제라고 믿는 상상의 영역이기도 하다. 두려운 와중에도 새로운 관계의 싹은 돋는다.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다른 그림책 '내가 여기에 있어' '봄은 또 오고'도 역시 멋지다.
<작가 소개>
아드리앵 파를랑주 Adrien Parlange
프랑스 오르베뉴 지역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성장했다. 올리비에 드 세르 미술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다. 광고 일을 하다가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어린이 책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종종 잡지와 신문 작업을 하기도 한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롭고 독특한 그래픽 아트를 완성하며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로 2015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 상을, 『리본』으로 2018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 상을, 『내가 여기에 있어』로 2020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 상을 받았다. 지금은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미지와 작가소개 출처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873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