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_이팝나무
5월 초, '생각의 여름' 공연을 보려고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에 갔다. 차창 밖이 하얬다. 아카시아와 눈 쌓인 듯 만발한 이팝나무가 고루 섞여 봄과 겨울 풍경을 쉴 새 없이 오갔다.
공연장 근처에서 냉메밀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이팝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연둣빛 나뭇잎. 살랑이는 하얀 꽃송이를 오래 올려다보았다. 혼자였고 낯선 곳이었지만, 이팝나무가 마중 나온 마냥 마음이 느긋해졌다.
'생각의 여름'은 '문태준'의 시 '눈사람 속으로'를 가사로 만든 노래를 첫곡으로 불렀다.
눈이 소복하게 내려 세상이
흰 눈사람 속에 있는 것만 같네.
껍질이 뽀얀 새알 속에 있는 것만 같네.
(...)
눈덩이가 커질수록 나는
눈사람 속으로 굴러 들어가네.
'문태준'의 시 '눈사람 속으로' 일부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니 흰 눈이 쌓인 고요한 겨울 풍경이 그려졌다.
'너도 듣고 있지..."
이팝나무에게 말을 건넸다. 열려 있는 공연장 창문 사이로 석양빛이 조명처럼 들어왔다.
조례호수공원에서 오늘 그릴 나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희망정원' 분수대 옆으로 쭉 심긴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 하나를 주웠다. 곤충다리 마냥 마디가 꺾인 가지 끝에 검지 손톱만 한 열매가 달려 있었다.
넌 누구니... 나무를 차근차근 살펴봤다. 촘촘히 돋은 잎사귀들 사이로 서너 개의 열매들이 모빌처럼 달랑였다. 저 멀리 우듬지 쪽 열매들은 공중부양 중. 하늘에 동동 떠 있는 것 같다. 수피는 오돌토돌했다. 이건 마치 소보로 빵 같군. (배고파 그렇게 보임) 굵은 가지들은 은빛으로 빛난다. (나무 검색 중)
흰 꽃이 없으니 이팝나무인 줄 몰랐다. 인천에서 보았던 이팝나무에게로 한 달음에 마음이 순간이동 했다.
"헤이, 이팝! 반가워." 소보로 빵 수피와 악수했다.
버스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오늘에서야 가로수로 늘어선 이팝의 행렬이 보인다. 봄이 되면 이 길이 하얗겠구나. 이제 흰 꽃이 없어도 널 알아볼 수 있어!
이팝나무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로 흰 눈(chion)과 꽃(Anthos) 하얀 눈꽃이라는 뜻이다.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부르다가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꽃이 여름에 들어서는 입하(立夏)에 피기 때문에 입하가 연음 되면서 이파, 이팝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