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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Sep 18. 2024

감감한 밤

다소 불안한 감이 있다 / 바라보는 감이 있다

  여름이 갔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올해도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냈다는 게 놀랍고 뿌듯했다. 토돌토돌 한 땀띠가 목에 올라와 따끔거리면서 간지러워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이내 처서가 지나고 얇은 이불을 새벽에는 덮어야 할 만큼 선선해졌다.


  9월 중순을 지나 여름 보다 더 한 가을이 왔다. 뙤약볕. 여름과 다르게 습하지는 않지만 볕이 내 몸을 관통한다.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선선한 날씨를 잠시 맛보았기 때문에 더 힘든 걸까. 추석 내내 뜨거웠다. 조금만 움직이면 얼굴이며 머리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얼굴 전체에서 분출되는 땀은 올해 처음 겪어본다. 갱년기인가.


  이러다 또 확 추워지겠지. 예측 불가한 날씨. 치솟은 물가. 과일과 채소값이 폭등했다. 머지않아 하루하루 생존해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게 되는 조마조마한 날들이 오는 건 아닐까.   


  어제 새벽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자다가 깬 터라 당혹스러웠다. 심장이 덜덜 떨렸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또 어지럽다거나 귀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불안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 되뇌었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내가 불안하구나. 불안하구나. 불안하구나. 되려 이렇게 생각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천천히 정돈되었다.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마치 불안을 잠재워 덮어주듯. 다시 잠이 들었고 다른 때보다 오래 잤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잠깐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나오면서 다 마른빨래를 걷을까 하다가 돌아와서 걷자 싶어서 그냥 두었는데 홀딱 젖었겠지요. 일상의 대부분을 귀찮아하지만 손빨래는 좀 덜 귀찮아하는 편입니다. 힘들지 않은 만큼만 조물조물 빨아서 볕에 널면 기분이 좋아져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하기 귀찮아하고, 또 어떤 일은 선뜻하게 되나요?


  도서관에서 식물 그리기 수업을 여름 내내 했습니다. 삐질삐질 땀 흘려가며 그릴 식물을 찾아다니고, 그리면서 여름을 보냈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작은 그림들을 그리게 됩니다. 항상 내 의도와는 다른 기대와는 빗나간 그림이 완성되지만 꽤 즐겁습니다. 마음에 들어서 자꾸 봅니다. 책 사이에 꽂아두고 그리운 사람 사진 보듯 봅니다. 내가 그린 그림에 후해서 좋습니다. 무언가 자꾸 바라보는 게 좋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자꾸 바라보게 되는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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