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마는 집에서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물마의 집에서 보이는 바다를 상상했다. 물마를 떠올리는 일과 같았다. 나에게 언니는 바다 같아요. 물마는 그 말을 듣고서 좋아했다.
물마를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여수 시청 앞에서 만나 바다가 보이는 짜장면 집으로 갔다. 물마는 창가 자리를 예약해 두었다. 자리에 앉으니 바다가 옆으로 펼쳐져 있었다. 바다가 너무 가깝게 있어서인지 배 위에서 짜장면을 먹는 기분이 났다. 탕수육에 비계 덩어리가 있었지만 뱉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물마와 먹는 음식은 뭐든 다 괜찮았다. 물마는 비계를 뱉었다 했다. 이제 곧 상상했던 바다가 펼쳐질 차례다.
물마 집은 높은 곳에 있었다. 나는 높은 곳에 가면 자연스레 그곳에서 사는 것을 한 번쯤 꿈꾸게 된다. 오늘밤은 그 꿈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마는 담배를 꺼냈다. 물마가 바다를 향해 시선을 둔 채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연둣빛이 감도는 하트 잎사귀가 일렬로 쫄랑쫄랑 달린 것이 새로 돋은 어린 새싹처럼 싱그럽다. 잎사귀가 흔들리다 조가비가 맞닿는 소리를 낼 것 같다. 나무를 보자마자 들떴다. 어떤 나무는 햇볕을 받아 잎과 잎이 겹쳐서 만드는 잎 그림자가 유독 아름답다. 목련, 튤립나무가 그렇다. 햇볕이 잎을 잘 통과하는 느낌. 나무 아래쪽 가지는 아래로, 위쪽 가지는 위로 뻗어 있다. 순응하면서도 저대로 자라고 있는 모양이 나를 사로잡았다. 수피는 잿빛이다. 거칠고 메말라 보인다. 얼마나 오래 여기 있었을까.
물마에게 나무 자랑을 늘어놓으니 지금껏 살면서 그 나무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물마가 나무 이름을 묻는데 나도 이름을 몰랐다. 천천히 알아도 좋을 것이다. 생의 중심에 사랑이 있는 물마와 어울리는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마의 집에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여수 막걸리에 김치전 먹기. 나는 나섰다. "김치전은 내가 만들게요." 물마는 김치와 오징어, 부침가루를 준비해 주었다. 프라이팬, 가스레인지, 뒤집개까지 모두 낯설었다. 첫 장은 그럭저럭 나왔다. 두 번째 장은 무리였다. 반죽을 너무 많이 부어버려 프라이팬 옆면까지 반죽이 차올랐다. 한 번에 뒤집는 건 불가능했다. 전을 조각냈다. 오징어와 김치가 분리돼 떨어졌다. 조급한 마음에 계속해서 전을 뒤집는데, 보다 못한 물마가 "그냥 좀 둬봐요." 나는 전을 두고 전전긍긍 댔다. 물마에게 맛깔난 김치전을 해주고 싶었는데... 다른 음식은 몰라도 전은 그나마도 자신 있는 편이었는데...
망했다. 그래도 물마는 마지막 조각까지 맛있게 먹어주었다. 왜, 나는 굳이 김치전을 하겠다고 했을까. "김치볶음밥 잘 먹었어요."라고 물마는 엽서에 썼다. 맞다. 전이라기보다 볶음이었다.
물마의 집에서 보았던 바다는 기억에 없다. 물마와 강아지 복슬이와 함께 산책했던 꼬릿한 바다 냄새만 기억난다. 다시 처음부터 상상할 수 있다.
물마 집에서 보이는 바다.
하룻밤 정도는 묵을 수 있는 바다.
물마에게 계수나무냄새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계수나무는 물들기 시작하면 솜사탕, 달고나, 캐러멜 같은 달달한 냄새를 낸다 한다. 어디선가 캐러멜 냄새가 나서 둘러보면 계수나무가 있다는 글을 보았다. 물마는 캐러멜향과 맛을 좋아한다. 솔트 캐러멜 케이크는 물마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앞으로 하나 더 상상할 수 있다. 계수나무는 어떻게 물들어 갈까. 캐러멜 색? 계수나무 냄새를 물마가 좋아할까. 상상하면서 물마에게 물어볼 수 있다. 물마 이야기를 쓰기 위해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물마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을 때 계수나무로 말문을 틀 수 있는 게 좋다.
물마가 '휘낭시에'를 발음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한 번 더 말해달라고 했다.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새소리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