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하소연

by 고라니


뒷산은 오르길. 둘둘 말린 요가 매트는 펼쳐지기를. 운동장은 내 발소리를. 책상에 너저분하게 쌓아 놓은 책들은 정돈되기를. 할 일은 뒷전이고 책에만 코를 박고 있다. 장소를 바꿔가며 책을 읽다가 집중이 안 되면 불을 끄고 이불속에 쏙 들어가 유튜브에 빠져 허우적. 눈알이 뻑뻑해 굴리기힘들어지면 그제야 눈을 감는다. 너저분한 생활. 생각도 마음도 말끔하게 정돈되지 않고 주렁주렁 덧대어지는 느낌이다. 무겁다.


새해여도 새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새해의 다짐은 꿈도 못 꿨다. 부득부득 안경을 새로 맞췄다. 분위기 바꾼다고 뿔테로 맞췄다. 안경점에서 썼을 때는 괜찮았는데 쓰고 다니다 보니 초점이 제대로 안 맞는다. 땅이 쑥 올라와 있어 걷기가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새로 맞춘 안경을 밟는 꿈을 꿨다. 다시 헌 안경을 꺼내 쓰고 다닌다. 새 안경은 모셔둔다. 밟을까 무섭다. 머리 길이가 어정쩡하다며 미용실을 추천받았다. 숱을 좀 쳤다.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양 옆머리가 뻗치면서 너무 붕 떠서 풀고 다닐 수가 없다. 자르기 전보다 더 엉성한 거 같다. 아니 별반 다르지 않다. 나름 새해니까 변신해 보려고 노력을 해 봐도 신통치 않다.


얼굴이 영, 못 쓰겠다.


내 얼굴에 스스로가 엄혹한 잣대를 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데 누가 봐도 얼굴빛이 칙칙했던 모양이다. 얼굴에 빛이 나와야 운이 좋다며 지인은 화장품을 추천해 주었다. 1+1 행사 기간이니 놓치지 말라며 링크가 왔다. 빛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장바구니에 크림, 토너, 비누 등을 담았다. 화장품 배송이 늦어진다 싶어 확인하니, 결제가 되지 않았다. 젠장.


지금보다 나아지려고 살아가는 걸까. 살다 보면 나아지는 걸까. 절망도 희망도 아닌, 허기짐. 요즘은 먹고 돌아서면 자주 배가 고프다. 몸은 뻑뻑하다. 추워서 나가기도 싫고 추워서 집에 있기도 싫다. 이런 하소연은 더더욱 싫지만 하게 된다. 젠장.


사람 만나는 게 내키지 않는다. 칙칙한 낯빛, 시끄러운 마음, 무거운 겨울 점퍼. 귤도 다 떨어졌다. 그나마 주홍빛 귤을 보는 순간에는 침이 고였는데... 그래서 요즘따라 귤? 오렌지? 패턴의 니트에 자주 손이 간다.


빛은 화장품, 옷, 헤어에서 나오는 게 아닐지도. 고요, 만족, 수용, 꾸준한 걷기, 침묵, 유연한 몸, 열린 마음, 몰두, 간소한 식사, 위험 감수, 활기에서 비로소 빛이 나오는 게 아닐까. (과연)


다시 빛날 수 있을까. 다시 요가할 수 있을까. 다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빛나지는 않더라도 내가 날 업어줄 수 있다면, 자장가도 불러주고 말이야. 삐삐처럼.

작가의 이전글눈 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