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환한 밤이 지킨 것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09

by 글맘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09 _ 달빛 환한 밤이 지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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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약함을 긍정하는 것은

정의를 추종하는 것보다 고귀하다.

__<니체 아포리즘> p.114



저는 지금 밤에 머물러있습니다.

늦은 밤, 홀로 카페에 앉아

식어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있어요.

곧, '문을 닫겠습니다' 같은 말소리가 들려오겠지요.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카페로 걸어오는 길에 한 생명을 살렸고,

그래서 이미 충분히 충만한 마음이 가득해졌거든요.

생색을 내어볼까, 자랑을 해 볼까 생각해 보니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달빛 덕분이거든요.


어둑해진 길을 골똘히 걷는 중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나만의 생각의 정원을 거니느라

코 앞이나 발 앞은 잘 보지 못한 채였습니다.

제법 서늘해진 밤바람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고요한 마음 안에 머물고 있었죠.


그런데 그 순간,

마치 눈 앞에서 노란 전등이 반짝 켜지는 듯,

달빛이 쏟아지지 않겠어요?

내가 그 자리에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반짝! 하면서 쏟아지기에

온 마음이 그리고 걸음마저 멈추고야 말았는데

그 빛의 끝에는 한낮 동안 달궈져 후끈해진 길을

부지런히 횡단하는 사마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마귀를 살려보려는 고운 달빛의 마음을

어찌 제가 건너뛸 수 있었겠어요.


제법 긴 다리, 세모난 얼굴, 갈색의 몸.

사마귀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이렇게 지켜보다 보니 혹시나

저 멀리 앉은 새가 와서 채어가거나

빠르게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가 다가오면

달려가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이 차오르더군요.


아마, 이 길을 건너 저 풀숲으로 들어가면

천연덕스럽게 몸의 색을 바꾸고,

알을 품는 날을 고대하겠지.


이렇게 달빛은 한 생명과 그 생명에 깃든

또 다른 생명을 살렸고,

저는 지켜보는 마음을 배웁니다.


지켜본다는 건

'지키다'는 마음과 '바라본다'는 마음이

모두 담겨있는 것임을요.

내 마음의 품으로 보호하며 바라본다는 것임을.

단순한 시선 하나만이 아님을.

’지켜본다‘는 건 넘치는 마음을 꿇어앉히며

가만히 지켜보는 것임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사마귀의 지척에 서서

저는 문득, 나를 지켜봐 주는 시선들을 생각했어요.

이내 감사하다는 마음을 품어버리고 맙니다.

이날 환한 달빛이 지켜준 것은 아마

한 마리의 사마귀만이 아닐테지요.

그런 밤의 가운데에 여전히 머무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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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정성과 사랑으로,

기도로 길러진 존재들이다.

__<단어의 집> p.125


오늘도 나답게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리추얼 필사, 글맘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