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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Nov 27. 2021

미처 책에 담지 못한 동네3

'이태원' 중 일부,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나에게 이태원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나의 서울살이 첫 해인 1997년, 이태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과 그로 인한 사회적, 개인적 충격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태원은 여느 동네와 달리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 낯설고 이국적인 동네로만 인식되었다.

실제로도 이태원은 마음이 편해진다거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동네와는 거리가 멀다. 거리엔 읽을 수도 없는 언어로 쓰인 간판과 길 밖으로 비집고 나온 식당 테이블이 아우성이다.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잘못 들어가면 미군 전용 클럽이나 성 소수자들의 은밀한 아지트, 민망한 성인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나타난다. 행여 좁은 골목에서 흥청망청 술판을 벌이고 있는 관광객이나 내 몸집의 두 배는 족히 넘을 법한 거구의 외국인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긴장부터 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유별난 동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적 도시경관의 특성이 뚜렷하게 인지된다는 것이다. 마치 보통 한국 사람과는 미묘하게 다른 한국계 미국인들의 외모를 통해서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간과하고 있던 보통 한국인의 외모를 발견해내는 것과 같다. 낯설어짐으로써 좀 더 객관화가 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태원에서는 교회 첨탑 위 붉은 십자가와 어설픈 장식이 달린 가로등, 무질서한 간판, 은행나무 가로수, 길가에 주차된 현대·기아 자동차, 가로수 사이에 걸린 현수막, 붉은 벽돌로 뒤덮인 구릉지 주택가, 석축과 옹벽, 경관의 배경에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산(山), 그 밖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여 인지조차 못했던 한국적 도시 기호들이 유독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이 출간되었습니다. 한 땀, 한 땀 정성드려 그린 서울의 풍경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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