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나에게

일하는 나에게

by 풀씨


나이 오십


그간 얼마나 바빴던지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많은 것들이 일머리 끝 편에

고랑 같은 실개천을 내어

졸졸졸 흘러갔다.


일더미 위에서

일더미 아래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밤하늘 폭죽처럼 쏘아 올리며

분주한 겨울을 나고 나니

봄이다.

그리고 쉰 살이 되었다.


막 마흔이 되려던 무렵에는

흔쾌히 마흔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했다.

서른이 되려던 무렵에도

조용히 '서른'을 찾아 읽어가며

서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했다.

언제나 무엇에나 익숙해지는 것에

느린 나를 미리미리 준비해 주고

싶었지만

그 해도 저 해도 어수룩하게 보냈다.


그러나 그런데 그래서


오십은 그럴 새도 없이 왔다.

마치 3월 낮에 가벼운 겉옷을

하나 더 입은 기분으로.

해마다 봄이면 걸쳐 입는

정답게 늘어진

분홍 노랑 카디건 같은

오십 살이 왔다.


삼월은 나에게

봄을 주고

'이봐, 잠깐 거기 서봐'한다.

돌아보니 물에 반쯤 잠긴

나의 징검다리들이 웃는다.

그래, 뭐. 그랬지. 뭐.

저쪽은 좀 더 멀어졌고

앞쪽은 좀 더 가까워졌다.

그래, 그렇지. 뭐.

징검징검 살아왔네. 뭐.


나중에 나는

공기가 되고 싶다.

조금은 징검다리에 부서지는

아주 작은 물방울

조금은 강변의 물결 일부

아주 몇 번은 바닷가의 물보라

또 아주 조금은

산길의 보드랍고 고운 흙


가끔 딱새를 보면 너무너무 반갑다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다 운다.

나는 울보였고 여전히 잘 운다.


202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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