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6 일
<우리는 위험을 감지한 어린 새들과 같았어>
너에게
우리 말고 누가 우리를 알겠니. 그때의 너와 나를.
그래서 나는 너를 찾고 찾아. 네가 있길. 네가 잘 지내길. 그리고 다시 너를 만날 수 있길.
일을 하다가 힘내려고(너의 편지들은 모두 양면의 날이지) 너의 첫 엽서를 읽었어.
너의 말은 첫 줄의 '용기를 내어 너에게 약간의 언어를 전한다.' 그게 다였지.
너는 용기를 냈었구나...
언제나 당당하고 근사한 아이였는데 용기를 내어야 할 때도 있었구나.
15살, 우리는 일 년이나 한 반이었는데 내 이름도 틀렸더구나.
반이 달라지고 네가 보낸 첫 엽서였던 걸까?
우지연, 3의 1이라고 적었구나.
3학년 1반. 16살.
살면서 너는 졸업 앨범 속의 나를 가끔 찾아봤을까? 찾아볼까?
(제발 그러지 않았길. 살며시 웃어본다.)
넌 첫 줄 아래 <평행선>이라는 시를 적어 보냈어.
김남조 시인의 시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몇 글자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지.
시는 중간에 갑자기 다른 문맥으로 넘어가는데
'사랑은 여름날 무지개처럼 사라져 가버린 것이라면
우정은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한 것이다.'라는 글이지.
그래, 우정. 우리의 우정. 강물처럼 흘러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 아래에 너는 더욱 다른 색감의 글을 적었단다.
'속으로 생각해도 입 밖에 내지 말며
서로 사귐에도 친해도 분수를 넘지 말자.
그러나 일단 마음에 든 친구는
쇠사슬로 묶어 서라도 놓치지 말자.'라는.
셰익스피어지. 물론 검색해서 이제야 알게 되었어.
각각의 시와 문장들에 그때도 좀 '이상하다...' 생각하며 갸웃했었지.
엽서였으니까 너의 마음을 대신한 어떤 글들을
작은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었겠지.
너는 엽서 끝에 간신히 추신으로 '연과 행을 무시했음'이라고 썼어.(귀여운 너 ^^)
또 너의 이니셜도 꾹꾹 눌러써서 내게 주었지.(늘 그렇게 썼지 대문자 Y와 소문자 u)
넌 이 엽서를 아침 일찍 와서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을까?
아니면 내게 직접 주었을까?
기억나지 않아서 서글프지만... 그만한 세월을 지나온 우리 두 사람을
추억하며 미소 지어.
나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
요즘은 너의 귀여움 덕분에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
널 생각하며 많이 울지만 또 웃기도 하니까. (진짜 양날의 검이라고!)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놓치지 말자고 해놓고 어디로 사라졌니?
널 사라지게 한 나를 미워하다가
깨끗이 손 털어버린 너를 원망하려다 차마 그건 못하고
그저 너를 그리워하고 있단다.
귀여운 너였는데... 사랑스러운 너였는데 어떻게 살아왔을까?
누군가는 너의 사랑을, 너의 사랑스러움을 차지했겠지. (따뜻한 미소 : )
나는 너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지.
네가 걸어놓은 주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지만 멍청이라서 알지 못했지.
뭐라도 다 좋아. 쇠사슬이든 주문이든 기도든.
나는 연어처럼 너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
세월은 우리를 그때의 너와 내가 될 수 없게 하겠지만
가장 행복하고 아팠던 시간을 내게 준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우리의 우정을 이 세상, 다음 세상, 그다음 세상에도 가져갈 거야.
무섭지? 하하하.
어쩌면 우리 우정은 500년 전부터였을 수도 있단다.
이번 생 여기까지 살아보니 알 것 같아...
(우리가 또 만난다고 하면 너는 괴로울까? : )
매일 너를 생각하며 기도해. 너의 행복을.
2023 11 26 일
지현
p.s 내가 보낸 편지들도 궁금하단다 : )
내 편지들이 너를 행복하게 했기를...
물론 넌 늘 내 편지에 너무나 기뻤다고 적어주었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한 동안에도 그러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