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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Dec 05. 2023

너에게_우리의 미래에 거의 다 온듯해서

2023 12 05 tue

너에게


2023년 12월, 너는 어디 있니? 

우리가 쉰두 살이라니.

열다섯에서 정말 멀리도 왔지?

너는 말했어.

혼자 있는 시간이면

과거의 너, 현재의 너, 미래의 너, 그리고 나를 생각한다고.

그중에 타인은 나 하나라고.

지금은 어떠니?

너의 생각들 속엔 누가 있니?


너의 편지들을 꺼냈던 그날부터 오늘까지

두 달을 꽉 채워 너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단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십 대, 어린 시절.

15살 새 학기에 만나 열아홉 12월에 끝났으니

꽉 찬 오 년을 보낸 거지?


물론 나는 그 후에도 널 언제나 꽉 끌어안고 살았지만

너를 찾아갈 수는 없었어.

너의 행복을 바랐으니까.

아니, 나의 안위를 바랬으니까.

누구보다 빛난 삶을 살아야 하는 너였고

누구의 눈에도 드러나기 싫었던 나를 살게 해주겠다고

결심했으니까.

우리의 시간들은 그저 어린 시절에 있을 수 있는

착각이라고 못 박아 두고 싶었지.


그동안 나, 열심히 재밌게 살았어.

하지만 이제와 이룬 것은 별로... 손에 쥔 것도 별로...

그저 나이만은 확실히 먹어버렸네 : )


이제 어디서도 너의 모습 볼 수 없고

너의 안부 알 수 없게 된 불안에 대해 

매일 심장이 무너지는 마음을 견뎌야 하는 

나이 많이 어른이 된 것이 나의 미래라니. 

좋지 않다. 그렇지? 


오랫동안 너를 잃은 건 괜찮았지. 

사느라 허둥대기 바빴고 너를 묻고 가는 게 어른인 줄 알았지.

희미해지다가 애틋해지다가 따스해지던 너와의 추억들은

불현듯 찾아오곤 했지만 지난 계절의 트리 장식처럼 여기려 했지.

또 삶이 나의 사랑하는 존재들을 하나 둘 내게서 떼어낼 때마다

나는 더 어른이 되어갈 수밖에 없었지...

그게 나의 최선이라고 믿으며 살았어. 


요즘엔 그래.

나도 이곳을 떠나겠지. 너도 이곳을 떠나겠지 하는 생각.

남은 사람들에 대한 고요하고 안온한 작별을 

떠올리며 출근할 때가 많아.

내 마음 정말 약해 빠져서 자꾸 그런 준비를 한단다.

이제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구나.


너도 내 생각할 때 그런 불안을 느낄 때 있지?

젊을 때는 맑은 하늘 올려보다가, 비가 오는 창밖 보다가 

내 생각났겠지만 (모두 네가 한 말이니까. 그렇게 했겠지? 그치?)

이제 내가 살아있을까 여기 있을까 불안하지 않니? u-u


잘 살고 있다는 거 믿으면서도 불안해.

우리의 미래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더 먼 미래가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 걸까?

늙어가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조금이라도 더 늙기 전에 너를 보고 싶다고 울어... 이기적이지?

이보다 더 늙으면 너를 어떻게 보지? 그런 생각해. 

아직도 너한테 너무 못난 나는 보이고 싶지 않아서...


네가 내 편지를 받고 

한용운의 '당신의 편지'를 아는지 물었잖아.

그게 나는 네가 나를 아쉬워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시를 써주어야 하나?

그런 편지를 써줘야 하나?

내가 뭘 잘못했지? 

네 마음에 드는 편지를 써주지 못해서 토라졌던 마음 너는 아니?

한용운의 그 시는 찾아보지도 않고

그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버렸는데...

이번에 그 시도 다시 찾아보았단다.

읽은 적 있었지만 몰랐던 거야.

그 시속의 마음을 읽었더라면 다음 편지엔

너에게 해야 했을 약속과 너를 만나러 가겠다는 기일들을 빼곡히 썼을 텐데.

바보 멍충이 같은 나는 그것을 그저 간과했겠지...


미안, 겨우 그런 나였던 것을.

그런 나를 친구로 선택한 너의 안목은 뭐였을까. 괜스레 너를 탓해본단다.


너는 많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선생님들에게는 신망의 대상이었지.

너를 잘 몰랐을 땐 다른 친구들과는 

어딘가 다른 네가 불편했지만

너의 친구가 된 후로는 

누구보다 너를 자랑스러워했단다.


이제 그런 자랑스러움 사그라졌다고 해도

그때의 보드라운 사랑스러움 옛것이 되었다고 해도

이제야 그때의 진실에 대해 떳떳해질 수 있어 기뻐.

그때의 우리, 그때의 마음,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마음속 약속

그 모든 것이 진실되었었구나 알게 돼서 기뻐.

그런 마음이 이렇게 영원할 수 있는 거구나 알게 돼서 기뻐.

그저 말뿐이 아닌 드디어 '영원히'에 대한 실체에 속하게 되었구나 깨달았어.

세월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열아홉. 스물. 스물 하나.

초록하고 재밌게 살았던 이십 대와 

여전히 푸르렀지만 슬픔을 배운 삼십 대

삶을 지켜내던 사십 대.

그리고 이제야 너에게 돌아온 쉰둘의 나.


나에게 나타나줘.

그날 너를 보았던 내 눈빛 속에 들어있던 나를 말할 기회를 줘.

그리고 그동안의 너를 말해줘.

네가 만난 싱클레어들과 데미안들을 말해줘.

그래서 너는 누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

물론 너는 네가 되었겠지.

우리는 유일한 하나니까.


부디 너를 만날 수 있길.

부디 너를 만날 수 있길.

네가 오랜 세월 살아보니 그때의 마음이 치기 어렸다고

너 자신을 부정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단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다 좋아. 너무나 기쁠 거고 고마울 거야.


오늘도 항상 네가 기쁘고 다정하길.

(나의 모든 말들이 너의 말들이라는 것을... 너는 알까?

네가 나의 시를 베끼던 열여덟처럼

나는 너를 암송하며 살아왔더라...)


그동안 너를 찾지 않아서 미안해.

그게 옳다고 생각했던 나를 용서해.

사랑하고 보고 싶어.


2023 12 05 


너의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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