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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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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Dec 17. 2023

너에게_37년 전 너에게 써주지 않았다면_너를 위한 시

2023 10 19 치앙마이에서 쓰고 2023 12 17 집에 와서 다시

너에게



더운 나라의 저녁

사방으로 문이 열린 식당 테이블에 앉아

밥을 기다린다


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를 오는 노인이

내 앞으로 걸어오는 초록 스니커즈를 신은 중년이

내  옆을 지나가는 젊은 태국 청년이

너 일지도 몰라서

스쳐가는 찰나의 그들을 가만 들여다본다


눈물은 제발 집에 들어가 있으렴

나는 좀 더 너를 보고 싶으니


테이블 위에 스푼 포크

수족관의 물고기

네모난 시계 아래

솔방울을 안고 계신 부처님

모든 것에서 너를 본단다


식당 주인이 유리컵과 세븐업을 놓고 간다

아 그런데 네가 세븐업이 되었으면 어쩌지?

너를 다 마셔버려야지

그리고 입을 닦고 똠얌꿍은 안 먹고

밥 값만 내고 나와야지


나는 너를 오래 보지 못했고

너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

너도 그렇겠지 너도


우리는 이제 서로가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지인과 식사를 하더라도

알 수 없겠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름 석자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떠나

서로를 감춰둔 지 오래


그래, 그래서 이제 나는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무엇에서나

너를 볼 수 있게 되었지 

이토록 서럽게도 말이야

이토록 가엽게도 말이야


작은 빗방울, 뜨거운 햇살

빈티지 코랄 핑크의 벤츠

수많은 사원과 부처님들

스님들의 오렌지색 가사자락

어린애들의 맑은 눈동자

노인들의 선한 주름

개들의 다정함

고양이들의 어린냥

새들의 신비로움

그 사이사이에서 너를 봐야 하지

너를 볼 수 없어서

모든 것에서 너를 봐야 하는 나는


여름 나라에서

너를 생각해


보고 싶고

그립고

사랑하는 너를 생각하며

시를 써


시를 좋아한 너였으니까


2023 10 19

2023 12 17 


지현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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