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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Dec 22. 2023

너에게_이번 생에 너를 찾지 못해도

2023 12 22 금

너에게


내가 이러는 게 조금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

그때로부터 이렇게 멀리 왔는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일에 자유롭긴 어렵지.


내가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던 것처럼.

너도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겠지?

그리고 우리를 멈칫하게 하는 질문을 가진 사람과의 교류도 있었을 거야.

나는 그랬거든.

내 안의 질문들을 마구 뒤엉키게 하던 어떤 사람이 있었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어.

그는 내가 가진 질문과 의문에 대해 알지 못했을 거야.

그는 영웅적이고 사랑스러웠지만... 

그가 위태로워 보일 때면 나는 모른 척, 바보인 척했지.

다만 유쾌한 날에만 여럿이서 만나 술과 수다, 즐거움만 나눴지.

그 사람은 예리한 사람이었으니까 곧 알아차렸어.

내가 그저 그런 바보라는 것을.

그런 내가 부끄러워. 그게 그때의 최선이었지만

지금도 내가 거기까지 밖에 안돼서 아쉬워.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그 답게 살고 있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큰 인상을 남겼지만

내 생각을 말하지는 못했어.

실례가 될까 두려웠고 놀림받을까 싫었어. ^^;

영웅적으로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 때문에 저항받는지 알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

나 같은 인간들 때문에 그 사람은 더 힘들고 짜증 나 했었던 것도 같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인간들.


어릴 땐 제법 당돌하게 굴기도 했지만

결국엔 시시한 애라는 걸 다 들켜버린 어느 밤부터

나는 그와 대등한 존재가 될 수 없었어.

그건 그냥 서로 묵인하기로 했지만

난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 못난 인간이 되어버렸지.

나는 나이나 성별을 떠난 자유로움을 가진 

그 사람의 존재성을 좋아했어.

감히 그 사람을 응원했고

(내 응원이 그 사람의 기분을 망칠지도 모르지만)

그가 자랑스러웠지.

너처럼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그였으니까.

(너 이후로 다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과 만났을 때... 나는...)

한때나마 그와 그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너와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될까? ^^

너를 찾아야만 가능하겠지?

그리고 네가 허락해야 가능하겠지?


내가 찾았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

네가 그 사람이길 바랐던 나의 마음.

네가 잘 살고 있어서 안심했던 마음.

널 더 찾아 헤매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

너의 마음이라고 확신했던 나의 이름.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너에게 편지를 쓴단다.


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지.

동지였고 나는 팥죽을 먹었어.

너도 그랬기를.


2023 12 22 금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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