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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Jan 06. 2024

너에게_너의 거짓말 나의 거짓말

2024 1월 6일 토

너에게


함박눈이 오네.

도서관에서 일하고 나오니 저녁 6시. 

비처럼 오다가 함박눈이 되었어.

나는 괜찮아. 

거짓말이라도 괜찮고 거짓말이 아니라도 괜찮아.

다만 너의 행복을 바랄 뿐이니까.


만약 내가 불행했다면 너를 찾지 않았을 거야.

행복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할 테지만

너를 영영 볼 수 없다면!이라는 가정을 두니까

나는 어쩔 바를 모르게 슬퍼졌어.

이렇게 너와의 인생이 끝나버리면 나는 어떡하지?

그래도 좋을까? 나한테 물었어.

나는 괜찮지 않았어.

그래서 너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나한테 너에 대한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절망했지만

곧 너의 시골집 주소를 보고 희망을 만들었지. 

그건 확실하고도 엄청난 자신감이었어.

그리고 예정되어 있던 여행을 떠났어.

매일매일 즐겁고 재밌고 좋아서 

네 생각에 눈물을 참기 어려울 때가 있었지만

너와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행복했어.

네가 수학여행에서 불렀다는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 상자>를 마지막 날 호텔 발코니에서

함께 간 작가님과 치앙마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노래했어.

고맙고 즐거웠어. 

한국은 10월의 가을, 그곳은 마치 너와의 시절이 담긴 듯한 여름나라.

안온한 사랑으로 휘감긴 식물과 황금빛 저녁 햇살을 가진 도시는 온통 너였어.

그. 래. 서.

여행 중에 가족들로부터 

너에게 보낸 소포가 되돌아왔다는 소식에도 기죽지 않았어.

너를 찾아가면 되니까.

난 9월에 거의 전국을 돌았고

다른 나라에도 다녀왔으니

그까짓 거리는 혼자서 가뿐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기껏 찾아간 너의 외가댁에서 모든 건 미스터리가 되었지.


난 울었고 나를 미워했어.


그리고 처음으로 sns에서 너를 찾아봤어.

너는 없는 것 같았어.

너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내 sns계정을 내 이름으로 바꿨어.

네가 보면 당장 알 수 있도록 머리를 쥐어짰지.

그리고 너에게 계속 편지를 쓰고 썼지.

네가 알아야 하니까.

내가 너를 찾는다는 것을.

내가 찾는다고 네가 달려와 줄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너를 너무나 보고 싶다고 알리고 싶었어.


하지만...

네가 아니라고 했어.

거짓말이길 바라.

거짓말이 아닌 것보다 거짓말이길 바라.

그렇지 않으면 난 계속 너를 찾아야 하니까.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보다는

여기가 기착지였으면 해.

그래서 내가 설득할 수 있길.

네 마음이 바뀌길. 바래.

하지만 모든 건 여기서 멈출지도 모르지.

그러면 진짜 동화가 되겠지.

내 마음대로 아름다운 동화로 끝내버릴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아름다운 동화의 엔딩을 바라지 않아.

현실의 너와 마주하고 싶어.

별거 아니다가 그저 그렇게 늙어버린 나.

재밌는 거 좋아하고 잘 웃고 잘 떠들고

변변하게 할 줄 아는 거 없는 나와 놀아줄 너를

만나고 싶다고 욕심냈어.


그러나 그걸 다 그만둬야 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


그런 걸 알면서도 그 여행이 나에게 말해.

이렇게 좋은 날이 얼마나 남았지?

이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남은 거지?

그걸 누구와 하고 싶지?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너랑 여행 가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야.

그저 너와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어 보고 싶고

너와 귤 까먹으며 서로를 놀리는 거 해보고 싶고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에 대한 

인생이 뭐였는지 말해보고 싶은 거야.

나에게 그토록 굉장할 수 있었던 너의 등짝을 때려보고 싶은 거야.

너 때문에!라고 원망해보고 싶고

네가 행복해서 너무 좋다고 웃고 싶은 거야.

넌... 그렇지 않은 가봐.

너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가진 너에 대한 마음을 아끼겠지만

그러지 않을 거야. 난 이제 어른이니까.

그런데 그토록 어른스럽고 따뜻했던 네가 나를 부정하는 거라면

나는... 슬퍼. 너는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괜찮은 거구나. 

이제 우리가 만난다면 얼마나 볼 수 있겠니.

그러니 안 보는 게 더 좋은 걸지도 모를까?

아무튼 나한테는 너의 행복이 우선이니까

괜찮기로 했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해야지.

그 이유를 내가 모른다고 나를 한심하다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알아, 그 말도 맞아.

나는 한심하고 이기적이야. 

나는 내 생각만 하고 너와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끝내야 한다는 게 싫었어.

욕심이지. 실컷 잊고 살아놓고

이제 너까지 욕심내고 있으니까.


고작 3개월이 지났어.

그만할까 라니...

나는 어려운 거 힘든 거 싫어하고

오래 아픈 거 사절인데...


그래도 이거 거의 통한의 40년인데...

나 조금 더 해도 되지 않을까? ^^;;;

조금만 더 하고 그만할 거야. 


잘 자. 내 꿈을 꾸든지 말든지 하고. (웃음)

나는 평생 네가 꿈에 안 나와서 신기하기도 하고

너는 내 꿈을 꾼 적이 있는지 궁금도 해. ^^;


그럼, 오늘 1월 6일 밤 8시 41분에


너의 모든 행복을 바라며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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