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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Jun 14. 2024

너에게_둘에게_지호와 지호에게

2024 06 14 금

안녕, 두 사람.


지호의 지호에게 (중년의 지호와 그의 아들 청년 지호에게)


내일 두 사람이 보리의 정원에서 고기 구워 먹을 거라고 아빠에게 들었어.

아빠가 지호 모기 물리지 말라고 모기장을 치신다고 했어.

그걸 어떻게 하실지 그 모습이 너무너무 보고 싶다. 

모기장 치는 거 거들겠다고 옆에 멀뚝이 서서는

아빠 하는 모양새를 보고 배를 잡고 웃을 거 같거든.

아들 온다고 준비하는 그 모습이 엄청 귀여워 보일 거 같아.

그리고 부럽겠지. 사랑 가득한 그 마음이.

지난번엔 지호가 잠깐 있다 가서 아빠가 조금 실망하신 것 같았어.

많이 놀고 부자간의 좋은 시간 되길 바라.


내가 만나본 지호 아빠는 정말 멋진 분이야.

내가 살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 가장 특색 있는 분인 것 같아. ^^;

남자들 특유의 허세도(미안... ^^; 애정 담은 말이야), 

성별을 떠나 인간이 가진 허세도 없이 스트레이트한 사람이었어.

처음 뵈었을 땐 그저 동네 뒷산에서 자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었지. 

그즈음 우리 가족은 유기된 보더 콜리를 돌봐주고 있었어.

하지만 우리가 키울 수 없어서 사람 좋아 보이는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지.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뵈었을 때

여쭤봤는데 그 개가 이웃의 개라는 거야. 

방치된 채 키워지는 강아지가 가엽어서 돌봐주신다고. 

우리 가족은 보더 콜리를 돌봐주다가 사정이 있어

결국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어.

그런데 지호 아빠는 여전히 보리에게 더없는 사랑을 주고 계시잖아.

아줌마 동생이 그 친구와 흠뻑 정이 드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때 보더 콜리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모르는 척했고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채로 지냈어. 

하지만 개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알지?

집에도 작은 강아지가 있다고 들었어.

우리 가족은 보더 콜리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워. 

우리 딴엔 최선을 다했지만. 보더 콜리는 사실 가장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두 번이나 포기당했으니까... 우리도 전 주인처럼 슬쩍 놓아버린 거지... 

"우리 개가 아니야."라면서...

그런데 지호 아빠는 보리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다 하시는 것 같아.

처음엔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시지, 살인지도 몰랐고 

알려고도 안 했어.

아주 드물게 산책길에서만 마주치면 반가웠어.

그러다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얼마 전 우연히 그 길에서 다시 만났지.

이제는 친구가 되어도 될만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어.


내일, 아빠가 지호를 위해 준비한 영화. <시네마 천국>.

이웃인 나와 나의 어머니도 초대해 주셨는데

내일 일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초면에 편하게 말해서 미안하고...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줌마도 지호의 미래를 응원할게.


아빠처럼 '별을 셀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고

또 함께 별을 셀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길 바라.

(유리 놀슈테인의 <안개 속의 고슴도치> 지호도 보면 좋겠다.)


아빠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하지 않게 되어 다행인 마음과

얼마나 이쁜 아들인지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 반반이야.


피어나는 꽃송이 같은 아들에게 아빠는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다 할 수 없는 말들이 그 영화에 담겨 있겠지.

아빠가 말씀하셨어.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 영화를 골랐다고 : )

성공이 뭘까? 지호의 아빠는 성공했을까? 지호는 성공할까? 

나는 그렇다고 믿지만 누가 내게 넌 성공했잖아. 하면 불쾌하겠지. ^^;

사람은 성공하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바라는 걸 이루려 애쓰는 과정이 성공이 맞다면 

우리 모두의 여정은 성공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그게  모두 <시네마 천국>에 담겨 있는 메시지겠지.

토토로 자라서 중년의 남자가 되고 알프레도 아저씨와 같은 

할아버지가 되어 산다면

더없이 성공한 삶이 될 거라 믿어.


사람은 모두 흠결과 과를 가졌으니 

지호는 아빠를 칭찬만 하는 아줌마에게 동의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보다

지호는 아빠의 다면을 알고 있을 테니까... ^^

그런데 내가 얼마 보지 않는 아빠는... 그렇게 번잡스러운 자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어. ^^

지호 아빠는 진실한 자기에게서 이탈하지 않으려 했고 자기 자신에게 또렷했지.

그게 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느껴질지 대강 알만 했는데

아빠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어. 그래서 나는 많이 웃었단다.

자기 자신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결국 사람은 '나'로 태어나 '자기 자신'이 되려 사는 것 같은데

많은 사람이 나에게로 가는 길을 잃곤 해.

그리고 그런 지호 아빠가 부럽기도 하고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어.

내가 본 지호 아빠는 사랑이 많고(몹시도) 본인은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많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그런 지호 아빠를 보며 쉽지 않겠지만 나도 배울 수 있다고 믿게 됐어.

자기 자신을 잃지 않겠다고 맹렬히 삶을 헤쳐나가는 사람.

나이를 먹었지만 깨끗한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

가시밭 같은 인파 사이를 강아지 보리와 뛰어가는 소년.

그런 사람이 지호 아빠였어.

지호의 동의를 조금은 구하며 긴 편지 마칠게... ^^

재밌게 들어주었으면 싶어.

그리고


세상의 많은 별을 셀 줄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거라 응원할게.


2024년 6월 14일 금요일


이웃의 아줌마가


추신. 나의 어머니가 중년의 나를 지켜봐 주시듯, 나중 나중까지

할아버지가 된 지호 아빠가 중년의 지호도 지켜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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