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글을 쓴답시고 긁적이게 되면서 내 마음엔 깊은 열등감 하나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텅 빈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창조해 내거나 말끔히 정돈하는 사람들이 펼쳐내는 펄떡이는 노동이 그것이다.
아침 주방의 경쾌한 도마 소리와 온 집안을 군침 넘치게 하는 냄새로 가득 채우는 엄마의 부엌일은 밥상 위에 고스란히 차려졌다. 도마 위에서 가지런하게 썰린 무나 대파는 여러 재료가 한데 어우러진 국이나 찌개 속에서도 맛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이 되고, 화덕 불과 만나 요란한 바다 비린내를 풍기는 조기는 노릇노릇한 자태로 접시 위에 뉘어져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러운 부엌 노동의 결과물은 눈과 코를 정확하게 노크하고서 입안으로 들어가고, 혀의 각 부위에서 확실하게 오감의 방점을 찍으며 식구들의 맛에 대한 기대에 부응한다.
반면 나의 노동은 어지간한 바쁜 척으로는 생색조차 내기 어렵다. 가만히 앉아 굴려야 하는 머릿속 일들은 오히려 꼼짝 않고 집중해야만 제대로 펼쳐졌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게을러 보이고 한량스러운 작동법인지는 등 뒤로 지나가는 가족들의 한숨 어린 시선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내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들은 밥과 연결되었다. ‘오늘은 밥값을 했는지’, ‘밥 먹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말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내뱉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누구도 원한 적 없는, 눈사람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내 쓰기의 가치를 가늠해 보는 것이었다.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흐름에 뒤처지는 듯한 불안함이 들 때, 점점 낡아가고 사라지는 것들 속으로 밀려나는 듯한 서글픔이 밀려올 때, 아무것도 아닌 사상누각에 도착한 듯한 공허함이 찾아들 때면 선명한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 아스라한 그리움에 기대었다.
이곳에 끄러 모은 기억의 조각들로 나의 추억과 사랑을 담은 한 권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온전한 지금의 나로 있게 한 완전한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게는 되었으나, 여전히 그 가늠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밥값을 하고 있는지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